"고등학생이나 초등학생이나 얼굴 못 보긴 마찬가지예요."
고등학생인 두 딸과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주부 장모(48ㆍ서울 송파구 가락동)씨는 평일에 단 하루도 자녀들과 저녁을 같이 먹지 못한다. 고2, 고3에 올라가는 두 딸이야 오후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느라 그렇다 쳐도 초등학교 6학년 아들도 고등학생 못지 않게 바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장씨 아들 한모(13)군이 오전 7시 전화영어수업을 시작으로 방과후 태권도, 영어ㆍ수학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은 오후 8시. 1주일에 한 번 한자 학습지 교사가 찾아오는 날은 더 정신이 없다. 장씨는 "성장기인 아들이 키가 안 클까봐 일찍 재우려고 최대한 적게 보내는 데도 이렇다"고 말했다. 한 군의 평일 자유시간은 태권도 학원과 수학 학원 사이에 남는 1시간 정도다.
서울 지역 초등학생이 고등학생만큼 여유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2학기 서울지역 초중고생 1,745명을 조사한 '저소득층 아동ㆍ청소년의 체육활동 참여 실태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평일 평균 여가시간은 195.6분(3시간 15분 36초)으로 고등학교 평균인 195.2분(3시간 15분 12초)과 차이가 없었다. 중학생은 241.2분으로 초등학생보다 오히려 45분가량 여가가 많았다.
초등학생은 고등학생보다 정규수업 시간이 짧지만 그만큼 학원, 방과후 활동 등 과외 활동이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맞벌이 가정이 크게 늘면서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학원을 전전하면서 생긴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김혜숙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일하는 엄마들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없는 현실과 사교육 열망이 합쳐진 결과"라며 "전인교육이 박탈당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의 고상한 여가생활을 만들어주려고 학원을 보낸 것이 오히려 여가시간을 단축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바이올린학원에다 발레학원까지 다니는 초등학교 4학년 조모(11ㆍ양천구 목동)양은 "엄마가 악기 하나와 발레는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해서 배우는데 요즘엔 공연 연습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졌다"고 하소연했다.
권순용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아동기는 자아가 형성되고 사회성이 발달하는 시기라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여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한데 사교육에 찌든 우리 현실은 거꾸로 가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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