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9위 한화그룹의 지주회사인 (주)한화가 일단 상장폐지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화 측이 김승연 회장의 횡령 혐의 기소 사실을 공시한 금요일 저녁 이후 주말 동안 거래소가 부산히 움직이며 발 빠른 결정을 내린 덕분이다. 하지만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평가와 "결과적으로 대기업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비판이 엇갈린다.
한화, 왜 문제됐나
작년 4월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이 바뀌었다. 주요 임원이 일정 규모(대규모 법인은 2.5%, 일반법인은 5%) 이상 횡령ㆍ배임을 한 경우 해당 회사의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 시기를 '확정판결 후'에서 '혐의 발생 후'로 앞당긴 것. 회사가 임원의 배임ㆍ횡령 등으로 타격을 입는 경우 투자자를 선제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김승연 회장 등 한화 임원 3명이 한화S&C 주식을 저가 매각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된 것은 작년 1월 29일. 횡령ㆍ배임 금액(899억원)이 자기자본의 3.88%로 기준(2.5%)을 초과하는 만큼 4월 이후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한화 측은 혐의 발생 뒤 1년도 더 지난 3일 오후에야 기소 사실을 공시했다. 김 회장 등에 대한 검찰 구형이 있은 다음 날이었다. 늑장 공시였지만, 상장폐지 심사 요건에 해당된 것이 명백해진 만큼 거래소도 부랴부랴 나섰다. 처음엔 규정에 따라 6일부터 일단 매매정지를 하고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주말인 4일과 5일 긴급 회의를 통해 아예 상장폐지 실질심사위원회에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불거지는 형평성 논란
작년 규정 개정 이후 유가증권시장에서 횡령ㆍ배임 발생 공시를 한 기업은 10개. 이들 기업 중 상장폐지까지 간 곳은 없지만, 대부분 매매정지 기간을 거쳤다. 보해양조의 경우 상장폐지 실질심사위에서 '상장폐지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이끌어내기까지 근 2개월 가량 주식거래가 정지됐고, 마니커는 한화처럼 실질심사위까지 가지 않았지만 2주간 매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화에 대해 과도한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화 측이 자진 공시하기까지 1년여 동안 관리를 소홀히 한 거래소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물론 코스닥시장의 경우 임원이 단 돈 1원만 횡령해도 상장폐지 심사 대상에 포함하는 등 유가증권시장보다 엄격히 관리하고 있지만, 작년에 13개 기업이 상장폐지 됐다는 점에서 코스닥시장과의 형평성 논란도 비껴가기 어렵다.
한화 측의 1년 넘는 늑장 공시 역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나마 공시가 이뤄진 것도 투자자들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금요일 저녁이었다. 일각에선 "거래소와 한화 측의 사전 조율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시장 안정을 위해선 신속한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재계 서열 9위인 한화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주)한화의 시가총액은 2조9,000억원. 유가증권시장 내 비중(0.25%)이 만만찮은 상황에서 결정이 늦춰지면 투자자 불안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실제 상장폐지 가능성은 별로 없는데 실질심사까지 가서 시간을 끈다면 시장에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논란이 일단락된 만큼 향후 한화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실질심사에 간다고 해도 상장폐지까지 가진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었던 만큼 주가에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영태기자 yltee@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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