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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속재판서 한국 변호 맡은 일본인 변호사 "재판 끝났다고 한·일 과거사 마침표 의미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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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속재판서 한국 변호 맡은 일본인 변호사 "재판 끝났다고 한·일 과거사 마침표 의미는 아냐"

입력
2012.02.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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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끝났다고 과거사 문제가 종료된 것은 아닙니다. 끝까지 싸워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죄, 보상을 이끌어 낼 겁니다.”

2001년 한국인 원고 수백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했던 재한군인군속재판에서 원고 측 변호인이었던 오구치 아키히코(68)씨가 한국을 찾았다.

군인ㆍ군속재판은 야스쿠니 신사 합사 철회청구를 포함해 유골반환, 태평양전쟁 당시의 강제징용ㆍ징병에 대한 손해배상 등 전후 보상과 한일 과거사 문제가 총망라된 소송이다.

지난해 11월 30일 일 대법원이 한국인 원고 414명의 요청을 모두 기각하면서 10년 이상 끌어오던 송사는 마침표를 찍었다. 6일 최종심 판결에 대한 한국 보고회를 앞두고 4일 서울 청량리동 민족문제연구소 회의에 참석한 오구치 변호사는 자못 결연한 표정이었다.

일본내 대표적인 지한파 인사인 그는 판결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한국민에 대단히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앞으론 사안별로 대응 방향을 정해 과거사 문제에 접근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야스쿠니신사 합사 등의 문제를 일일이 거론하며 일 정부의 모순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일본이 한국민을 야스쿠니에 합사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14년째가 되던 1959년이었어요. 일 정부는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일본을 위해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일본은 뭔가를 해줘야 한다’논리에 따라 합사했어요. 하지만 이후 보상 문제에서는 돌변했습니다.” ‘한국인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보상 대상에서 뺐다는 것이다. 그는 “일 정부는 잣대를 마음대로 휘둘렀다”며 “모순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인군속재판에선 금전 보상 문제의 비중이 컸지만 일 정부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그는 꼬집었다. “일 정부는 5억달러를 지급한 1965년 한일조약을 근거로 더 이상 금전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했지만,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어요. 이게 90년대까지의 해석이었지요. 그러나 이번 판결에선 그런 과거의 입장마저도 뒤집었습니다.”

이런 입장 변화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비뚤어진 태도 때문이라는게 그의 판단이다. “2차대전 때 미국에 체류하던 일본인들이 억류되고 재산을 몰수당했어요. 이후 일 정부는 일본인의 개별적 재산 반환청구를 용인할 계획이었으나, 이렇게되면 한국민의 청구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나중에 미국이 사과와 보상을 하자 한국인의 권리까지 소멸시켰던 겁니다.”

“일본인으로서 일 정부를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야 하는 게 참 안타깝다”는 그는 자국 정부와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야스쿠니 합사 철회 청구 소송 항소심이 남아있는데다, 일 현지 분위기도 정부에 우호적인 것 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일본 내에서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어요. 일본의 과거사 정리는 결국 일본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글ㆍ사진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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