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화가 지난 금요일 오후 늦게 올린 공시 하나가 휴일 동안 투자자들에게 큰 혼란과 불안을 일으켰다. 회사 자기자본 대비 3.9%에 해당하는 899억원의 임원 횡령ㆍ배임 혐의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거래소는 즉각 대기업에서 횡령ㆍ배임액이 자기자본 대비 2.5% 이상인 사건이 발생하면 상장폐지 여부를 심사한다는 증시 규정에 따라 이번 주부터 거래정지를 예고했다. 그러자 국내 10위 재벌그룹의 지주회사이자 시총 3조원인 (주)한화의 상장폐지 우려까지 나도는 일대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거래소는 어제 긴급회의를 열고 한화 측이 제출한 경영투명성 개선방안 등을 감안해 이 회사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키로 결정했다. 초유의 거래정지 사태는 막은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지난해 4월 개정된 개정 증시 규정에 대한 한화 측의 무지와 거래소의 업무 태만이 빚은 공연한 소동이라는 점에서 되새겨야 할 점이 있다.
사실 문제의 횡령ㆍ배임 사건은 지난해 1월 검찰의 기소와 함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김승연 회장 2세에 대한 주식 저가 매각 혐의 등이 포함돼 '검찰과 재벌의 전쟁'이라는 시각에서 보도와 분석이 잇따랐다. 그런데 지난해 4월 증시 상장 규정이 강화돼 이전까진 확정판결이 있어야 상장폐지 심사대상이었던 게 혐의만 있어도 심사를 할 수 있게 개정됐고, 횡령ㆍ배임 기준액도 자기자본의 2.5% 이상으로 변경됐다. 따라서 규정 개정과 함께 공시도 당연히 해야 옳았다.
이번 사태는 새 규정을 숙지하지 못해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결과적으로 불성실 공시를 한 한화 측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규정 개정의 주체인 거래소도 널리 공표된 사건에 대해 조회공시 요구조차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업무 태만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됐다. 당면한 문제는 투자자의 피해와 혼란이다. 아무리 사건이 널리 알려졌다 해도 투자자로서는 공시 불성실로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 가능한 상황이다. 한화는 이런 점을 잘 알아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수습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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