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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작가 최초로 日도쿄 모리미술관서 회고전 여는 설치미술가 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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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작가 최초로 日도쿄 모리미술관서 회고전 여는 설치미술가 이불

입력
2012.02.0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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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53층. 현대문명이 집약된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모리미술관에 반짝이는 조각으로 만들어진 개 한 마리가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구토하고 있다. 개는 깨진 거울과 크고 작은 구슬, 크리스털 등 제 몸을 이루는 반짝이는 것들을 입 밖으로 쏟아낸다. 구토의 행위로 찬란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오브제의 이름은 '더 시크릿 셰어러(The Secret Sharer). 통유리창이 있어 가장 아름다운 동시에 거대 도시가 뿜어내는 에너지로 위압감이 서린 모리미술관의 마지막 방에, 이 작품은 홀로 자리했다.

세기말적이고 기괴한 여전사 이미지를 풍기는, 이 시대 문제적 예술가 중 하나인 설치미술가 이불(48)씨의 대규모 회고전 '이불展: 나로부터, 오직 그대에게(LEE BUL: FROM ME, BELONGS TO YOU ONLY)'이 모리미술관에서 4일 개막했다. 지난 20년간 이씨의 작업을 집대성하는 전시로 5월 27일까지 일본 관객과 만난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작가가 모리미술관에서 대규모 초대전을 연 것은 중국의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에 이어 두 번째다.

4일 오후 미술관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이씨는 "며칠 지나 더 잘할 수 있었다고 후회할 수도 있지만 전시를 연 지금으로선 그동안 열심히,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며 회고전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두 점의 신작 중 하나인 '더 시크릿 셰어러'는 2년 전 떠난 황구를 떠올리는 작품이다. "늙은 황구는 제 작업실에서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힘없이 앉아있다가 구토를 하고는 조용히 일어나 나가곤 했어요. 개들에겐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내보내는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하지만 제겐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죠." 가족처럼 16년을 함께 산 황구를 떠나 보내며 그와 더불어 보낸 30, 40대 젊은 날과 그간의 작업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칫 감상적으로만 흐르지 않게 하려 작가가 기울인 노력은 '스튜디오 섹션'에 전시된 수많은 드로잉과 작은 조각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로부터, 오직 그대에게'라는 전시 타이틀은 몇 년 전 연인에게서 받은 편지 속 문장이다. 이번 전시에도 선보인 작품 '나의 거대한 서사'(Mon grand récit) 작업을 하다 미궁에 빠졌을 때 받은 이 글귀로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이씨는 "쓰나미와 지진, 원전사고 등 여러 재난을 목도하며 삶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일본인들에게 그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3년여 전부터 전시를 제안한 모리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카타오카 마미씨가 이번에 전시를 마련한 것도 그동안 이씨가 인간 존재의 조건과 삶과 죽음에 대해 통찰해온 점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20대에는 내가 만들지 않은,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졌죠. 여전히 세상이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바꾸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그 좌절감과 실망감에 대해서만은 지속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유토피아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작가로서 일종의 삶의 방식, 저항의 방식이 있다고 믿는 거죠."

이씨는 전날 일본 등 전 언론을 대상으로 연 기자간담회에서 체념한 듯 "과거에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야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했는데, 그에 대한 부연설명인 셈이다. "예술만을 추구한 적도, 목표로 삼은 적도 없다. 단지 수단으로 예술을 택했다"는 그는 그간의 작업을 통해 더 넓은 품으로 세상을 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순간적 존재', '인간을 초월하여', '유토피아와 환상풍경'과 '나로부터, 오직 그대에게', '더 스튜디오' 등 5개 주제로 나뉜 전시는 초기작부터 최근작을 아우르고 있다. 1990년대 여러 개의 팔이 달린 기괴한 옷을 입고 12일간 도쿄 시내를 활보하던 퍼포먼스와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구슬을 단 생선이 부패하는 과정을 보여준 '화엄' 등은 영상으로 소개했다. 1인용 노래방 형식의 '가라오케 캡슐' 시리즈와 완벽한 신체의 의미를 탐색한 '사이보그'와 '아나그램' 시리즈도 전시됐다. 이씨는 모리미술관을 시작으로 아시아와 북미, 유럽의 미술관에서 순회 회고전에 나설 예정이다.

도쿄=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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