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제대로 들쑤신 거지. 안 그래도 반씩 나뉘어 뉴타운 사업을 하네 마네 하던 차였는데, 이제 박원순 시장이 요건만 되면 사업을 해제하겠다고 했으니, 사업 하겠다는 쪽과 안 하겠다는 쪽 둘 다 시끄러울 거야. 집주인들은 모두 뉴타운 사업을 반기려니 생각하겠지만, 이해관계가 달라 저마다 목소리도 다르거든. 그 동안 좀 조용한가 했더니, 아무튼 한동안 시끄럽겠어."
5일 오전 서울 용산구청 후문 일대 한남뉴타운1구역 내 A중개업소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정모씨는 지난달 30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뉴타운 출구전략을 밝힌 이후 이 일 대 분위기를 '혼돈과 대립'이라는 한 마디로 압축했다. 정씨는 "서울시 발표 이후 주민들 사이에선 뉴타운 사업을 계속 밀고가야 할지, 중도 포기하는 게 나을지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특히 (뉴타운 사업을 놓고) 찬반 대립이 극심했던 한남1구역의 경우 반대파 입김이 세지면서 뉴타운 추진위 측과의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산구청도 뉴타운 사업 추진을 둘러싼 주민 간 대립이 격화할 조짐이 보이자 주민들에게 공문까지 보내 동요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공인중개사 윤모씨는 "용산구가 최근 한남1구역 추진위에 공문을 보내 당장 사업이 취소되는 것이 아닌 만큼 주민들을 자제시켜줄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주민들의 혼란만큼이나 부동산 가격도 흔들리고 있다. 이달 들어 한남동 일대 중개업소에는 시세 및 매도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N공인 관계자는 "현재 대지지분 33㎡(10평)짜리 빌라가 3.3㎡ 당 4,500만원, 100㎡짜리는 3.3㎡ 당 2,500만원 정도로 작년에 비해 소폭 떨어진 상황"이라며 "앞으로 사업추진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외지 투자자들의 실망매물이 늘어날 경우 뉴타운 호재로 오른 거품이 상당 부분 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날 오후 찾아간 종로구 창신ㆍ숭인 뉴타운 재정비촉진구역 역시 주민 간 갈등 탓인지 곳곳에 찬반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특히 지하철6호선 동묘역과 가까운 숭인1ㆍ2구역의 경우 그간 뉴타운 사업에 반감을 가져온 원주민들의 반대로 구역해제 가능성이 점쳐지던 곳이었기 때문인지,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다. 인근 동대문부동산 관계자는 "원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동대문 상권을 기반으로 재산을 모은 토박이들이고, 다가구나 빌라 등으로 많게는 예닐곱 가구씩 세를 놓아 임대수입을 올리는 터라 구역해제를 원하는 주민이 꽤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외지 투자자들이 많은 창신9ㆍ10구역은 상대적으로 뉴타운 찬성 비율이 높은 편이지만, 서울시의 출구전략 발표로 순조로운 사업 추진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근 창신11구역을 제외하곤 아직 창신동 일대에서 추진위 승인이 난 곳이 한 곳도 없어 향후 주민들 의견에 따라 사업 중도 포기가 잇따를 가능성이 있다.
뉴타운 추진과 함께 1.5~2배 가까이 뛰었던 이 일대 지분 가격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인근 D공인 관계자는 "지분 크기에 따라 3.3㎡당 적게는 1,100만~1,200만원에서 비싼 곳은 1,700만~1,800만원 선"이라며 "서울시 발표 이후 3.3㎡당 100만~200만원 정도 매물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비교적 사업 진척이 빠른 영등포구 신길 뉴타운7구역과 범강남권으로 분류되는 송파구 마천 뉴타운 일대는 오히려 개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조합에선 외지 투자자가 많은 지역 특성상 이번 서울시 발표로 주민 협조가 더 잘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의 취지가 세입자 및 주거 취약계층 보호에 맞춰졌지만, 일부 세입자들은 뉴타운 사업을 철회할 경우 전ㆍ월셋값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고민하는 모습이다. 창신동에서 전세를 사는 주부 정미영(36)씨는 "뉴타운 이주에 맞춰 방을 바로 뺀다는 특약을 넣는 대신 시세보다 싼 조건에 살았는데, 사업이 철회되면 전셋값도 뛸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남1구역에서 주택임대사업을 하는 홍모(54)씨는 "그간 뉴타운 한다고 증축도 못하고, 이주 때 바로 방을 빼는 조건으로 방값을 낮춰주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며 "이번에 구역 지정에서 해제되면 리모델링 증축을 하고 그 동안 제대로 못 받은 임대료도 올려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박관규기자 ace@hk.co.kr
김민호 인턴기자(한양대 경영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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