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에서 자동차정비업체를 운영하는 심모(52)씨는 요즘 정비보다는 소송 준비에 여념이 없다. A손해보험사가 정비요금 관련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기 때문. 심씨는 A손보사와 지난 2003년 시간당 1만8,300원에 정비요금을 체결한 뒤 한번도 계약을 갱신하지 못했다. 심씨는 "보험사가 국가 공표 금액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하며 계약을 종용한다"며 "영세업자에게는 9년전 정비요금을 주면서 손보사들은 사상 최대 이익이라며 보너스잔치를 벌이려고 한다"고 성토했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2010년 자동차 정비요금이 인상됐다며 보험료를 일제히 올렸던 손보사들이 실제로는 대다수 정비업체에 정비요금을 인상해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해양부는 2010년 6월 자동차보험 적정 정비요금 수준(시간당 공임)을 2만1,553원~2만4,252원으로 공표했다. 앞서 2005년 공표한 1만8,228원~2만531원에서 3,325원~3,721원 올린 것. 인상률이 5년 동안의 물가상승률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보험료 상승에 대한 반대여론을 감안한 소폭 인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자정연) 등에 따르면 전국 5,200여 정비업체 가운데 1년 단위로 손보사와 계약을 갱신하는 정비업체는 최대 30%(1,500여개)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물가 상승률 4% 안팎을 적용해 정비요금을 올리는 업체 또한 17%(최대 260여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계약을 갱신하는 업체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 나머지 70% 이상은 계약 갱신조차 못해서 수년 전에 계약한 요금을 적용 받는 실정이다.
충남 천안에서 정비업체를 운영하는 김모(54)씨는 B손보사와 2009년에 체결한 시간당 정비요금 1만9,000원을 4년째 적용받고 있는 경우. 특히 보험사로부터 우수협력정비업체로 선정돼 일감을 주는 것이 오히려 족쇄가 됐다. 김씨는 "국가가 공표한 금액의 하한선이라도 달라고 하자 협력업체에서 해제하겠다고 하더라"며 "일감을 주니까 주는 요금대로 받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손보사들이 이처럼 제 멋대로 정비요금을 지급하는 것은 국토부의 공표가 참고자료에 불과하기 때문. 자정연의 백진호 기술과장은 "손보사들로서는 지급보험금을 줄여 영업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재계약을 미룬다"며 "일부 손보사들은 '대형손보사들이 올려주는 추이를 보고 대응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손보사들은 정비요금이 오르길 기다렸다는 듯 2010년 9월부터 삼성화재를 시작으로 3% 안팎의 자동차보험료를 인상했다. 한 대형손보사 관계자는 "일부 업체들은 굳이 수리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수리해 요금을 높이기 때문에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국토부는 공표제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폐지하고 보험업계와 정비업계간 협약으로 정비요금을 결정토록 하는 법안을 내놓은 상태.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정부가 적정요금을 공표를 해도 지키지 않았는데 시장 원리에 맡긴다면 횡포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적어도 정부가 하한선은 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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