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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사법부의 신뢰는 부러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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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사법부의 신뢰는 부러진 것인가

입력
2012.02.0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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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러진 화살'이 최근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상영관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있었다. 제작사 측에서는 소위 대박이 터졌고,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진실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밝혀져 후련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영화는 법원이 실제로 판결한 소위 석궁테러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사법부에서는 이 영화가 특정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1심에서 이루어 진 각종 증거조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채 특정 국면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사실을 호도해 사법테러를 미화하고 사법 불신을 조장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또 석궁테러사건의 원인이 된 교수지위확인 소송의 주심 판사가 법원의 합의과정을 개인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최근 서울고등법원 등을 방문한 자리에서 직원들을 상대로 이 영화 내용에 잘못이 있고, 비판할 점이 많다고 전제한 후 국민의 법원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의 원인이 무엇이고, 국민과의 신뢰와 소통을 주문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의문이 들었다. 석궁테러사건은 형사사건으로서 1, 2심과 대법원을 거친 사건이고 이미 그 형의 집행이 끝났다. 잘못이 있다면 재심 재판을 통해 바로 잡을 기회가 열려 있다. 따라서 석궁테러사건의 잘못 여부를 여기서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예술적 허구다. 그러나 영화에 팬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재미가 있기 때문일까?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결의 원리에 의해 의사가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국가에서도 소수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 민주국가에 있어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사법부다. 입법과 행정의 집행 과정에 다수라는 이름으로 행해 지는 불법에 대해 마지막으로 외칠 수 있는 곳이 사법부, 즉 판사인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국가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다. 민주국가에 있어서 법관에 대한 신뢰는 법관 스스로 지켜 나가야 하고, 또한 국민 모두가 지켜줘야 한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국민 모두의 재산인 것이요, 사회의 마지막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팬인 국민들도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로 영화 속의 법원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자가 아니었다. 법원은 권력 그 자체였다. 영화가 한 시대의 흐름을 표현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작금의 사법부가 소수자의 권리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이다. 사법부는 업무처리의 전 과정에서 국민을 진정으로 섬김으로써 사법부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국민은 변덕스러운 면이 있고 쉽게 잃어 버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재판이라는 것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작업이므로, 섬기는 방법은 엄정하면서도 분명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절차적 정의의 문제이다. 인생이 하나의 과정이듯이 재판도 일련의 과정이다. 재판은 실체도 중요하지만, 실체가 절차 속에 녹아들 때에 완전할 수 있는 것이다. 법관이 비슷한 사건을 다수 처리하다 보면 타성에 빠질 수 있다. "이 사건은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 정석"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영화 속에 배우 문성근 씨가 담당 재판장으로서 너무나도 리얼하게 연기한 장면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혹시 업무적인 타성에 빠져 절차적 정의를 무시하고 진행하지 않는지 뒤돌아 보아야 한다. 절차적 정의를 무시하면 실체적 정의 자체가 완전히 무너지는 까닭에서다.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판사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재판이 가장 멋진 재판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통해 사법부의 가장 멋진 재판을 상상해 본다. 사법부가 신뢰를 잃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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