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차별 문제는 축구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을 시작으로 각 대륙 축구연맹, 각국 축구협회까지 인종 차별과 관련된 문제는 엄중히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문제는 끊임 없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인종 차별과 관련된 문제로 시끄럽다. 중심에는 EPL 최고 명문의 하나인 리버풀이 자리하고 있다.
영국 경찰은 지난달 30일(이하 한국시간) 경기장에서 인종 차별적인 야유를 했다는 이유로 리버풀 팬 한 명을 체포했다. 29일 안필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의 2011~12 FA컵 32강전 홈 경기에서 원숭이 흉내를 내며 프랑스 출신의 흑인 선수인 맨유 수비수 파트리스 에브라를 조롱한 혐의다. 당시 리버풀 관중은 에브라가 볼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퍼부었다.
경찰에 체포된 팬은 스티븐 제라드가 에브라를 앞에 두고 슈팅을 시도할 때 원숭이 흉내를 내는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포착됐다. 리버풀 팬들이 에브라를 집단 야유한 까닭은 간판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 에브라에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한 혐의로 중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수아레스는 지난해 10월 경기 중 에브라에 흑인을 비하하는 '니그로(Negro)'라는 표현을 수 차례 한 혐의가 인정돼 12월 잉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8경기 출전 정지의 철퇴를 맞았다.
다인종 국가인 영국에서 인종 차별은 대표적인 금기 사항이다. 유색 인종에 대한 표현만 잘못해도 사회 생활이 끝장날 정도다.
에브라에 대한 인종 차별 발언으로 곤경에 몰린 수아레스와 리버풀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결백을 주장한 까닭이다. 수아레스는 "에브라에 사용한 '네그로(Negro)'는 내 조국인 우루과이에서는 결코 모욕적인 표현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스페인어로 네그로는 검은 색을 뜻한다. 수아레스의 결백을 옹호하기 위해 리버풀은 그를 지지하는 티셔츠를 제작해 단체로 착용하기도 했다. 수아레스는 인종 차별에 대한'마녀 사냥'의 희생물이라는 것이다. 에브라에 대한 관중의 집단 야유는 이 같은 주장의 연장 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아레스에 대한 징계가 '마녀 사냥'이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수아레스는 에브라와 신경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니그로'라는 표현을 7차례나 사용했다.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듭해서 같은 표현을 한 것이다.
인종 차별은 민감한 사안이어서 때로 웃지 못할 해프닝을 일으키기도 한다. '티에리 앙리가 설기현에 인종 차별을 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이 좋은 사례다. 설기현은 잉글랜드 2부리그 울버햄턴에서 활약하던 2005년 FA컵 32강전에서 앙리가 있던 아스널과 맞붙었다. 당시 앙리는 설기현 앞에서 닭 날개짓을 해 국내 팬들로부터 '인종 차별을 했다'는 오해를 샀다. 그러나 앙리의 제스처는 프랑스에서 '겁쟁이'라고 놀리는 장난스런 표현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9년 맨유 내한 경기에서 페데리코 마케다가 펼친 골 세리머니도 인종 차별 논란을 일으켰다. 마케다가 골을 터트린 후 손으로 귀를 잡아 당기고 혀를 내밀어 원숭이 흉내를 낸 것이 문제가 됐다.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 팬들을 조롱하기 위한 모욕적인 행동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결국 맨유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이었다'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인종 차별 문제로 축구 인생에 종지부를 찍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론 앳킨스 전 맨유 감독을 들 수 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 맨유 사령탑으로 재직했던 앳킨스는 2004년 TV 중계 도중 마이크가 꺼진 것으로 착각하고 마르셀 드사이를'멍청한 검둥이 녀석'이라고 표현했다. 공식 활동에서 모두 사임한 앳킨스는 '인종 차별 의사가 없었다'고 강변했지만 얼마 후 '중국 여성들은 세계에서 가장 못생겼는데도 중국 인구가 그렇게 많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망언으로 '골수 인종주의자'임을 확인시켰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