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몰락/박성민 지음 강양구 인터뷰/민음사 발행ㆍ332쪽ㆍ1만4000원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 자서전이 쏟아지는 한 켠에서 이를 테면 '정세 분석' 쯤에 해당하는 책들의 출간이 제법 눈에 띈다. 이 같은 정세 분석의 주류 역시 안철수, 조국 같은 반보수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을 소재로 삼은 책이 많다. 집권당이 14년만에 당명까지 바꿔야 할 정도로 위기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형식은 인터뷰지만 실은 정치 컨설팅회사 MIN의 박성민 대표와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가 '한국 정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갈 것인가'를 주제로 나눈 이야기를 묶은 <정치의 몰락> 은 지금 한국 사회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여는 분기점에 와 있다고 본다. 정치의>
책에서 종언을 고하는 것은 부제에서 명시한 대로 '보수 시대'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우리가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보수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증표로 7가지 현상을 들고 있다. 과거 박종홍, 남덕우, 김경동 같은 보수가 주도했던 지식인 담론을 지금은 진보가 이끌고 가고 있다.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보수 언론의 위세에는 금이 갔으며, 보수 세력이 압도적으로 많은 기독교의 신자는 점점 줄어든다. 김동리, 서정주, 이문열이라는 이름이 문화권력을 대표하던 시대도 지나갔다. 대기업의 창업주들은 비판과 함께 존경도 받았지만 창업 3세대 경영자들은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한다. 청와대,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같은 권력기관은 조롱의 대상이며 보수 정당에는 더 이상 유능한 인재가 유입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한국 사회의 '절대 강자'가 아니라 자칫 권력을 잃을 수 있는 '일개 정파'로 전락한 보수 세력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 선거, 안철수 현상 등으로 정권 재창출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이 같은 흐름의 동인을 배고픈 것은 참아도 촌스러운 것은 못 참는 '에스프레소 커피 세대'가 역사의 무대에 중심으로 등장했다거나, 공공성과 소통이 결여된 현 정권에 대한 반작용 등 다양한 시각으로 이들은 분석해낸다.
보수가 저문 뒤 새 막을 여는 것은 그럼 진보일까. 안철수 현상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작용이지만 안 교수의 정체성은 '안보'와 '성장'을 앞세운 박정희 패러다임에 대항하는 '신보수'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는 것을 결코 '진보'라고 말하지 않는다. 탄생할 것은 '새로운 권력'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2012년을 분수령으로 막을 내릴 것이 분명하지만 새로 등장할 것이 신보수일지, 진보일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이야기다.
대신 더 중요한 것은 '87년 체제' 같은 '비가역적인 변화'를 가져올 시스템 준비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법을 알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권력의 정통성 약화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75% 민주주의'의 도입이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결선 투표를 도입하거나 가능하다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확대, 아니면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정부든 국회든 절반 훨씬 이상의 민의가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의 몰락'과 '정치의 죽음'을 논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정치가 정치의 가능성을 믿고 제대로 된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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