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에게 알을 뺏긴 새들이 스스로 새총에 몸을 싣고 날아가 돼지 진영을 쳐부수는 게임, 앵그리 버드(angry birds). 이 게임은 돼지 무리가 풍비박산 날 때 주는 통쾌함으로 인기를 끌며 스마트 폰 게임의 절대 강자로 등극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 돼지가 아닌 신랑들이다. 게임 속 가상 신랑을 향해 물건을 집어 던져 맞추는 ‘앵그리 브라이드(angry brides)’가 분노한 인도 신부들에게서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
인도에서 딸이 셋이면 왕도 망한다
인도 결혼전문 포털사이트 샤디닷컴은 지난달 앵그리 버드를 본 딴 게임 앵그리 브라이드를 페이스북 무료 앱으로 선보였다. 홈페이지에 가면 힌두교 여신처럼 여러 개의 팔을 가진 인도 여성이 미간을 찡그리고 있다. 수많은 손에는 각각 프라이팬과 밀대, 술병, 하이힐, 냄비 등이 쥐어져 있다. 이것들을 집어 던져 화면 속 신랑 후보감들을 맞추면 점수가 올라간다.
신부들을 이토록 화나게 한 것은 무엇일까. 분노한 신부 그림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여성은 당신에게 필요한 힘과 보살핌, 사랑, 모든 것을 줄 수 있지만 지참금은 줄 수 없다”
인도 말로 다우리(dowry)인 결혼 지참금은 빠르게 변화하는 인도 사회에 여전히 박혀있는 악습이다.
부모들은 보통 매파를 통해 자녀의 배우자 감을 구하는데, 여기서 실패하면 샤디닷컴 같은 결혼 중매 사이트를 찾는다. 상대방의 종교와 혈통, 교육 수준이 맞으면 본격적으로 혼담이 오간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지참금이다.
인도여성민주연합(AIDWA)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평균 결혼 지참금은 10만~15만루피(230만~350만원). 인도 근로자의 평균 연봉이 4만루피임을 감안하면 기둥 뿌리가 흔들릴 정도의 금액이다. 신랑의 직업과 지위에 따라 지참금은 최고 1,000만루피까지 올라간다. 이 때문에 인도에는 “딸이 셋이면 왕도 망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지참금 살해’ ‘신부 불태우기’ 등의 단어가 관용어처럼 쓰인다. 지참금을 가져오지 못한 신부를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살해한 후 “부엌에서 일하다가 불이 나서 죽었다”고 둘러대면서 나온 ‘부엌 화재’라는 말도 언론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인도 경찰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자살이나 사고사 중 80%는 부엌에서 발생한다. 실제로 몇 년 전 갓 시집온 며느리가 제때 지참금을 가져오지 못하자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밥을 짓는 며느리에게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여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 밖에 혼기가 닥친 젊은 여성들이 지참금 부담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장기를 매매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낙태 전문병원은 “지금 (낙태하는 데) 수백 루피를 쓸 것인지, 나중에 (지참금으로) 수십만 루피를 쓸 것인지 결정하시오”라는 홍보 문구로 여아 낙태를 유도한다.
앵그리 브라이드는 분노한 인도 여성의 정신적 탈출구
물론 지참금 요구나 지참금으로 인한 폭력 및 살해는 모두 불법이다. 인도 정부는 1961년 지참금 금지법을 만들어 지참금을 주고 받는 것은 물론 이를 부추긴 사람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하고 있다. 인도 형법도 결혼한 지 7년 이내의 여성이 지참금과 관련, 남편이나 친지의 폭력으로 사망했다는 증거가 나오면 지참금 살인으로 간주, 이들을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그럼에도 지참금 관습은 여전히 인도 여성들의 목을 틀어 쥐고 있다. 국립범죄기록사무국(NCBR)에 따르면 2010년 지참금 때문에 사망한 여성은 8,391명이었다. 전년도에 비해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앵그리 브라이드는 이런 현실에 절망하는 인도 여성들에게 작은 숨통을 틔워준다. 신부들은 게임 속 신랑에게 프라이팬과 냄비를 집어 던지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다. 게임은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돼 무려 30여만 명의 호응을 얻었다.
샤디닷컴의 온라인 마케팅 책임자 람 바미디는 “아직도 인도인들의 결혼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참금의 병폐를 알리고 싶었다”고 게임을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참금은 인도 사회의 위협”이라며 “재미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지참금 반대에 참여토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비판도 있다. 매년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민감한 사안을 지나치게 가볍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이용자인 24세의 셔브항기 미탈은 “지참금 문제를 우스갯 거리로 만들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는 “신랑에게 냄비를 던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며 “이런 게임이 지참금 주고 받는 일을 멈추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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