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차.
'숨은 장소'라는 뜻의 이곳은 1531년 인도 라지푸트왕조의 수도로 건설된 작은 도시이다.
이번 겨울 인도 여행을 하던 중, 이틀을 이곳에서 쉬어갔는데 옛 성터의 운치가 도시 전체를 품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마을 중앙에는 광장이 있었는데 좌판을 깔고 장사하는 사람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이중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한 아이가 있었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인데 키는 내 허리에도 못 미칠 만큼 작았고 신발도 없는 것으로 보아 천민인 듯 했다. 인도 길거리에서 이런 아이들이야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구걸을 하지 않았다. 한 손에는 갓난 아기를 안고, 또 한 손에는 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동생의 손을 잡고 당차게 걸어가면서 우리에게 해맑게 웃으며 한국말로 "어디가요?"라고 인사했다. 인사는 당당하고 따뜻했다.
마을이 작다 보니 오가며 여러 번 이 소년과 마주치게 되었다. 엄마와 할머니가 좌판에서 악세사리를 팔고 있었고 자신이 직접 장사하는 좌판도 있었지만 물건을 팔아달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 일행이 식량을 사기 위해서 계란과 감자, 꿀 등을 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시작했다. 어린 꼬마인줄 알았는데 흥정 하거나 우리를 안내하는 모습은 온전하고 건강한 어른과 다름없었다. 여동생이 울면 데리고 다니면서 잘 달래주고 보살펴주었다. 이 어린 남매는 광장에서 유일한 맨발이었지만 돌길도 흙탕물에서도 잘 뛰어다녔다. 거기서 자신이 사는 방식대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냥 땅에 의지하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천사들처럼 말이다.
소똥과 파리, 냄새 나는 시궁창의 악취가 언제나 익숙한 그 땅에서, 거리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관광객의 심리를 파악한다.
하루에 오가는 몇 백 명의 이방인을 상대로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에게 구걸하며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 것이 거리의 아이들의 생존의 방법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이 맨발의 소년은 낯선 관광객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소년은 머지않아 청년이 되어 갈 테고 비록 불가촉천민이라는 굴레 속에서도 자기 방식으로 견뎌 남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을 거의 인솔하다시피 안내해줬던 이 소년은 영민하고 조숙한, 이미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한국의 아이들은 엄청난 교육열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주입된 지식만으로는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없다. 맨 땅에서 맨발로 살아남는 법을 우리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 길을 잃고 헤매는 어른들에게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밝은 미래가 아이들에게 있다. 한국 사회는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정서를 잃었다. 마음으로 나누는 인사는 사라졌고, 머리 속 계산만이 앞서나간다. 성공의 초점이 물질적 풍요에 맞춰져 있고 무궁 무진한 아이들의 꿈을 하나로 길들여 놓는다. 학교에서 받는 성적으로 인해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이 단순한 체계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우리 아이들이 터득하는 생존 방법이 좀더 창의적이고 인간적이었으면 좋겠다. 시험을 보기 위한 영어 공부가 아닌 소통하기 위한 언어 훈련을 하고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하기 위한 셈과 나눔을 먼저 배워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살아갈 세상은 결코 좁은 이 땅에 국한되지 않는다. 더 넓은 세계와 더 많은 사람들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문화와 정서로 세계와 소통하는 법, 겸손하게 귀 기울일 줄 알고 손 내밀어 먼저 도와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인도에서 만난 그 소년처럼 맑고 건강한 주체를 다시 찾고 회복해야 한다.
오르차의 소년에게는 꿈이 있었다. 복싱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왜소한 체구에 복싱이란다. 하지만 진심으로 이 아이가 훌륭한 선수가 되었으면 했다. 교육이나 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닐지언정 그 꿈이 꼭 이워졌으면 한다.
맨발의 청년이 링에 오르는 날을 꿈꾸며 다시금 소년의 그 눈을 기억해본다.
박근형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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