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 남아있는>
-왜 이 책을?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에는 영국에서 출판된 가즈오 이시구로 연구서의 서문이 실려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글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의 소설을 찾아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소설은 정교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안목에 동의하는 바이다." 무라카미>
-이 책의 좋은 점은?
"영국의 한 집사 이야기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이 집안이 몰락하면서 미국인에게 자택과 집사를 패키지로 넘겼는데, 그와 동시에 집사는 난생 처음 휴가를 얻게 되었다. 일만 열심히 하던 그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함께 일했고, 한때 자신에게 애정을 보였던 여직원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다시 채용하고 싶다는 명목 하에. 그는 집사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도 떠나 보냈지만 성실하고 능력 있는 최고의 집사라고 자평한다. 전반부에 독자들은 일을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중반부 이후 생각이 달라진다. 그는 순진한 주인이 나치에 놀아나는 동안 아무 조언도 하지 않았고, 유대인 시종들을 해고할 때도 무관심했다. 독자들은 이 대목에 이르게 되면 과연 사랑하는 사람에 무심하고 가치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일에만 매달린 그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를 품게 된다. 새 주인한테 잘 보이기 위해 부족한 유머를 익혀야겠다고 열심히 미국식 유머를 배워가지만 그에게 없는 것은 유머가 아닌 사람에 대한 사랑과 신뢰였음을 알 수 있다. 이 한심한 남자에게 남아있는 나날의 희망은 과연 뭘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소설이다."
-인상적인 대목은?
"전문가에게 농담은 결코 터무니없는 의무가 아니라 주인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는 의무라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나는 농담의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이미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지만, 내 모든 역량을 바쳐 농담이라는 이 직무에 접근한 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유머를 익히겠다고 다짐하는 마지막 문장)
-추천한다면?
"30, 40대 남자들에게 가장 좋지 않을까. 일에 매몰되어 바쁘게 살아가는 그들이 자신의 삶을 한 번쯤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남아있는 나날> 은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영어권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인생의 끄트머리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온 허망한 삶의 여정과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깨닫는 주인공 스티븐슨 이야기로, 그를 통해 1930년대 영국의 격변기를 그려내고 있다. 1993년 앤서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 주연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송은경 옮김. 민음사ㆍ314쪽ㆍ1만2,000원. 남아있는>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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