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이창호 사범님, 감사합니다. 제가 대신 열심히 싸워서 지난해 중국에 내준 우승컵을 반드시 되찾아 오겠습니다."
오는 3월 중국에서 열리는 제2회 초상부동산배 한중 대항전에 출전할 한국대표 수 6명이 모두 결정됐다. 박정환(랭킹 2위), 최철한(3위), 원성진(4위)이 랭킹 시드를 받았고 조한승(6위), 김지석(8위), 이지현(17위)이 국내 선발전을 통과했다. 작년에 출전했던 선수는 최철한과 박정환 뿐, 나머지 네 명 모두 새 얼굴이다.
이 가운데 특히 입단한 지 1년 9개월 밖에 안 된 신예 강자 이지현(21 · 2단)의 이름이 눈길을 끈다. 여자기사 이지현(4단)괴 동명 이인인 이지현은 입단 전인 2009년 3월 연구생 신분으로 국내외 프로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비씨카드배 본선 32강까지 진출하더니 2010년에는 올레배서도 본선에 오르는 등 입단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신진 기예다. 2010년 4월 입단 후에는 지난해 한국바둑리그 정규 리그 2위팀 영남일보 4지명으로 활약했고 천원전 4강에 오르는 등 한 해 동안 국내외 기전에서 40승 20패(승률 67%)를 거둬 다승과 승률 모두 16위에 올랐다. 입단 2년차 기사로는 대단히 좋은 성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현이 이번 초상부동산배 대표로 선발된 데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여러 가지 행운이 겹쳤다. 랭킹 17위인 이지현은 애당초 이번 대회 대표 선발전 참가 자격조차 없었다.
한국기원 규정에 따르면 외국이 주최하는 국제기전에 나갈 대표 선수는 먼저 정원의 반을 랭킹 순으로 뽑고 나머지는 정원의 4배수가 참가하는 선발전을 통해 정하도록 돼 있다. 이번 대회에는 한중 양국에서 각각 6명(후보선수 1명 포함)씩 출전하므로 규정에 따라 랭킹 1위부터 3위까지 자동으로 출전권을 부여하고 4위부터 15위까지 선발전을 치러 나머지 3명을 뽑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랭킹 1위 이세돌로부터 기원 측에 자동 출전권을 포기하고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통보가 왔다. 이세돌은 지난해에도 역시 랭킹 1위였지만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뚜렷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대회 비중이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에 따라 랭킹 시드는 4위인 원성진에게 넘어 갔고 대표 선발전은 5위부터 16위까지 12명이 치르게 됐는데 이번에는 랭킹 7위 이창호가 선발전 출전 포기 의사를 밝혔다. 이창호는 지난해부터 랭킹이 낮아져 대부분의 기전에 예선부터 출전해야 하므로 대국 부담을 줄이고 컨디션 조절을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이창호는 작년에 이 대회 선발전에 출전했지만 중도 탈락했다.
이세돌, 이창호의 갑작스런 불참 선언은 이지현에게 뜻밖의 행운을 안겼다. 선발전 커트라인이 17위로 내려감에 따라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출전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사실 행운은 또 있었다. 대표 선발전이 올 1월 하순에 치러졌지만 선발전 참가 대상을 작년 12월 랭킹을 기준으로 정했다는 점이다. 한국기원 규정에 '선발전 참가자는 선발전 예정일 전달 랭킹을 기준으로 정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이지현이 작년 12월에 랭킹 17위였지만 올 1월에는 21위로 밀려났으므로 정말 이번 초상부동산배와 깊은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강자는 운도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아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 게 진정한 강자다. 이지현은 지난 주 열린 선발전 1회전에서 출전선수 가운데 가장 랭킹이 높은 강동윤을 물리친 데 이어 2회전에서 윤준상까지 제치고 당당히 출전권을 따냈다. 강동윤과 윤준상 모두 지난해 이 대회 대표 선수로 활약했으므로 이지현이 본의 아니게 대표팀 물갈이의 주역을 맡은 셈이다.
"새해에는 어쩐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습니다. 어렵게 얻은 세계대회 출전 기회인만큼 반드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작년에 천원전에서 아쉽게 4강에 머물렀는데 올해는 그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한편 중국도 대표팀의 얼굴이 완전히 바뀌었다. 최근 치른 선발전에서 구리, 콩지에, 씨에허 등 기존 강자들이 모두 탈락하고 천야오예(23), 스위에(21), 펑리야오(20), 판팅위(16) 등 신예들이 출전권을 따냈다. 지난해 LG배 우승자 파오원야오(24)가 시드를 받았고 나머지 한명은 탈락자 중에서 추후 선정할 예정이다.
한국은 작년 1회 대회 때 박영훈 최철한 강동윤 박정환 허영호 윤준상으로 대표팀을 꾸려 구리 콩지에 씨에허 류싱 저우루이양 장웨이지에로 구성된 중국과 격돌, 1차전에선 3대2로 이겼지만 2차전에서 1대4로 져 종합전적 4승6패로 중국에 우승컵을 빼앗겼다. 3월 23일과 25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초상부동산배 우승 상금은 60만위안(약 1억800만원), 준우승 상금 40만위안(약 7,100만원)이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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