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정말이지 양심을 갖다 팔아먹은 모양이다. 이런 추위다 보면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노래 제목처럼 될까 봐서 꾸역꾸역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와 쉴 새 없이 지하철 칸칸을 오가는 사람들, 꽤나 많다.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제 안팎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구걸꾼들인 셈이다.
그들은 크게 두 부류다. 어쩌다 저 지경까지 몸이 상했을까 안쓰러워 마음 쓰게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멀쩡한 사지 육신으로 왜 저러고 살까 외면하게 만드는 이가 있으니, 그들 가운데 내 지갑을 열게 하는 이는 그래도 거저먹지는 않으려는 자들이다.
껌 한 통을 최소한 2,000원에 팔더라도, 어느 날 가방 속에서 우연찮게 씹을 껌을 찾았을 때 그 값은 치르고도 남음이 분명하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어제는 허벅다리가 하체의 전부인 한 아저씨가 내 앞에 섰다. "우리 장애인들이 목숨 걸고 만들었습니다. 기계가 깎은 거랑은 다릅니다. 믿어주세요. 팔아주세요. 살려주세요."
아저씨 손에 들린 것은 1,000원짜리 귀이개였다. 그에 목숨을 걸 만큼의 절박함을 가늠이나 하겠는가 싶어 나는 지갑이나 꺼내려는데 어라, 사람들은 왜 날 빤히 쳐다만 볼까. 돈 찾다 말고 왜 난 뻘겋게 달아오른 귓불이나 식힐까. 그나저나 단돈 천 원도 못 번 아저씨는 허벅다리 끝에 그 큰 구두 질질 끌며 또 어디로 가시나. 사주지도 못했으면서 사주는 척이나 하다 만 내가 그러고 보면 제일 나쁘다니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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