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서울시가 대중 교통요금 인상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작년 내내 ‘물가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누적돼 온 “공공요금 현실화”(지방자치단체)와 “인상 억제”(중앙정부) 갈등이 지자체 맏형 격인 서울시의 전격 인상으로 표면화한 셈이다. 정부는 줄곧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지자체들은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인위적인 ‘누르기식’ 물가대책이 점차 한계에 다다르는 분위기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오전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지난달 30일 서울시의 교통요금 150원인상 조치를 작심하고 비판했다. 그는 “여러 경로로 서울시에 이견(異見)을 전달했지만 결국 인상안을 발표한 데 대해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며 언짢은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공공요금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서민생활과도 밀접한데, 이번 인상이 연초부터 물가불안심리를 자극해 각종 서비스요금 등을 올리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며 “다른 지자체와 공기업의 인상자제 노력처럼 서울시도 뼈를 깎는 경영혁신으로 인상요인 흡수노력을 선행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장관은 서울시가 무임승차 손실 비용 등으로 국고 8,000억원 지원을 요구한 것도 단칼에 거절했다. 그는 가당치도 않은 요구라는 듯 언성을 높여 “모든 비용을 중앙정부에 떠넘기려는 발상은 이제 바꿔야 한다. 자기책임 원칙이 공공요금에서도 확립돼야 한다”고 서울시의 자세를 직설적으로 꼬집었다. 그는 특히 서울시가 이번 인상의 주요 근거로 노인 무임승차 등 복지지출에 따른 누적적자(2,550억원)를 든 데 대해 “도시철도는 국가가 운영하는 일반 철도와 달리 지자체의 책임”이라며 “작년 말 국고 지원을 담은 법안도 국회에서 심층 논의 끝에 폐기 결정이 났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전날 출근길 불편을 빚은 서울 지하철 탈선사고를 언급하며 “기왕에 가격을 인상한 만큼 어제 같은 사고로 시민에게 불편은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충고까지 곁들였다.
서울시도 발끈했다.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은 이날 오후2시 긴급 브리핑을 자청해 “부정확한 판단에 의한 박 장관의 비판에 유감을 표한다”며 정부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서울시의 인상 조치가 물가불안심리를 자극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작년부터 예정됐던 인상을 정부 요청으로 연기해 왔으며, 다른 광역시들은 이미 작년에 교통요금 인상을 마쳐 연쇄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근길 열차 사고는 “정부가 운영ㆍ감독하는 코레일 차량에서 발생한 것인데 서울시를 비난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회피”라고 비판했다. 또 국비 지원 역시 “서울 지하철은 하루 700만명이 이용하는 국가 교통망으로, 서울시와 정부가 공동 운영하는 게 맞다”며 국고지원 필요성을 굽히지 않았다.
박 장관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날 오후4시 기자간담회를 자청, “다른 곳보다 재정여건이 좋은 서울시마저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면 지방자치는 실종되고 말 것”이라며 재차 서울시를 강력 비난했다.
경제부처 수장과 서울시장의 정면 충돌은 다른 지자체에도 영향을 줄 개연성이 크다. 상당수 지자체가 정부의 강한 압박에 올 상반기 계획했던 교통ㆍ수도ㆍ가스비 등 인상안을 하반기로 미룬 상태지만, 적자 누적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상반기 인상을 강행하려는 몇몇 지자체에 최대한 협조를 당부하고 있지만 일부에선 물가상승률 범위 내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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