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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돈봉투' 논란… 주지 자리가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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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돈봉투' 논란… 주지 자리가 뭐기에

입력
2012.02.0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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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부산 범어사 주지 선거가 '돈 봉투'살포 논란으로 연기됐다. 급기야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 조계종 집행부가 1일 조속한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하고 국민 앞에 사과했다.

'불법이 오래 머물게 하고(住) 이를 지킨다(持)'는 뜻을 담은 주지가 도대체 어떤 자리이기에 스님들이 돈 봉투까지 뿌려가면서 되려는 걸까.

조계종의 교구 본사 주지는 지역 대표 사찰의 수장(首長)이라는 지위와 상징성으로 인해 대단히 명예로운 자리다. '사판승(事判僧)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다.

현재 조계종은 조계사, 범어사, 불국사, 해인사, 통도사 등 25개 교구 본사와 그 아래 2,500여 말사(末寺)로 구성돼 있다. 대체로 교구 본사는 50~150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다. 조계종단 스님이 1만3,800여명인데 이 중 25명만이 본사 주지에 오를 수 있다.

조계종 종법에 따르면 본사 주지는 임기 4년간 총무 교무 재무 포교 호법 원주 등 절의 모든 종무를 책임지고, 말사 주지 추천권을 갖는 게 전부다. 문제는 일부 교구 본사 주지가 사실상 임명권에 해당하는 추천권을 빌미로 말사 주지에게 '교구발전기금' 등 명목으로 매년 수십억원을 받아 그 중 일부를 챙기는 것. 한 불교계 인사는 2일 "이런 일은 불교계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비밀"이라고 밝혔다.

중부지역의 한 교구 본사 관계자는 "우리 절은 매년 60개가 넘는 말사 주지로부터 1,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씩 총 20억원 넘는 돈을 교구발전기금 등 명목으로 받는다"며 "그 중 적지 않은 돈을 본사 주지가 따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본사 주지가 말사 주지들로부터 돈을 챙기다 사법처리된 일도 있다. 제6교구 본사인 충남 공주시 마곡사의 주지들이 잇따라 뇌물 수수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2007년 12월 마곡사 주지 진각 스님은 일부 말사 주지들에게 임명 대가로 3억원을 요구해 1억6,000만원의 뇌물을 받아 유죄판결을 받았다. 후임 주지인 법용 스님도 2009년 12월 말사 주지들로부터 7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이 중 8,000만원의 뇌물 수수 혐의가 인정돼 징역 10월을 선고 받았다.

한 조계종 관계자는 "대부분의 말사는 재정이 열악해 주지 자리가 인기가 없지만 '수(秀)말사'의 주지는 서로 맡으려 한다"고 전했다. 수말사란 시줏돈이 많이 들어오는 말사를 일컫는 불교계 은어. 이 관계자는 "돈 봉투로 물의를 빚고 있는 범어사의 경우 말사가 169개이지만 수말사는 20개 정도"라고 말했다.

수말사 주지 자리를 둘러싸고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 관악산 연주암이 대표적 예다.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를 지낸 명진 스님은 "(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연주암을 차지하려고 용역들에게 10억원을 줬다는 말을 그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명진 스님은 "당시 연주암 주지였던 종상 스님도 이를 막으려고 그에 준하는 돈을 깡패들에게 준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잡음들은 사찰예산 운용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상당수 절에서 실제로 쓰는 돈의 50~70%만 회계에 반영하고 나머지는 주지가 개인적으로 쓰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서울 약사사가 지난해 예산이 6억원이라고 총무원에 보고했지만 실제로 회계감사를 한 결과 2배나 많은 12억원으로 확인됐다"며 "다른 절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의를 빚고 있는 범어사의 연간 예산은 약 130억원(국비와 자치단체 지원금 89억원, 시주 등 수익금 40억원). 하지만 시주 등 수익금은 자체 회계 처리를 해 구체적인 집행내역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본사들도 적지 않다. 제10교구 본사인 경북 영천시 은해사(주지 돈관 스님)가 2년 전 영천선화여고를 맡아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전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원철 스님은 "예전에 주지 자리를 여덟 번씩이나 고사한 스님도 있었는데 지금은 부유한 절의 주지를 할 사람이 너무 많아 탈"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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