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을 비과학이라고 홀대하는 것은 한국인의 삶을 구성하는 기층문화와 스스로 단절하는 것입니다. 불교나 도교 같은 고등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 무속에는 높은 수준의 종교적인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칼 융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분석심리학의 권위자 이부영(80)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가 반세기 넘게 이어온 한국 샤머니즘 연구 성과를 모은 <한국의 샤머니즘과 분석심리학> (한길사 발행)을 냈다. 서울대 석사학위 논문(1961년)에서 시작해 스위스 취리히 융연구소 수료 논문,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 융연구소와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의 한국 샤머니즘 강의 원고, 그밖에 약 40편의 논문과 새로 쓴 원고를 엮어냈다. 한국의>
이 교수가 정년 퇴임 이후 설립한 서울 성북동의 한국융연구원에서 2일 그를 만났다. 그는 "샤머니즘은 기원전 2만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화유산"이며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될 대상이 아니라 주술종교적인 체험"이라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인 그는 샤머니즘의 원형적 상징에 관한 연구, 그리고 정신병리나 심리치료와 관련한 문화정신의학 연구에 함께 관심을 두어왔다. 전자를 위해 무속의 여러 이야기들을 분석했고, 문화정신의학 연구로는 굿판을 찾아 다니며 무속인의 특성이나 의식 태도, 굿과 관련된 정신장애 사례, 병굿 사례를 통한 치료 효과, 빙의(憑依) 증후 사례 등을 살폈다.
1960년대 같이 숨어서 굿판을 벌이던 시절에는 어렵사리 참관을 허락 받아 구석에서 사설들을 열심히 받아 쓰고 있으면 신 내린 무당이 "쓰기만 하면 다냐"고 호되게 꾸지람하기 일쑤였다.
그는 한국 샤머니즘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고등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중심 신화를 갖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래서 이야기들을 교리의 형태로 만들기만 하면 "주술종교로 끝나지 않았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며 그 대표로 "한반도 중부 지역에 널리 보급된 '바리데기 신화'"를 꼽았다.
샤머니즘의 임상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현대 서양의학과 달리 "환자 개인보다 가족 전체 또는 공동체를 치유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무속의 치료는 개인의 병에 국한하지 않고, 이승과 저승을 다같이 불러 독특한 세계관으로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는 것이다. 그는 "병의 근원 구조를 없애기보다 그것을 화합, 통일시키는 이런 작업을 치유라고 부를 수 있다면 효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물론 한계도 있지만 서양의학이라고 모든 병을 다 고치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무속인은 서양 의료를 적대적으로 보지 않는데, 오히려 일부 극단적인 기독교 성직자들의 거부감이 더 심다"고 지적하는 그는 "샤먼을 보면서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심리적인 치료를 소홀히 하는 점도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굿이 "무대 위에서 연출되는 연극이나 예술의 일부에 갇혀 버렸다"며 "얼이 빠졌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공동체의 화합을 유도하는 집단 정신 치료의 역할"을 하는 "마을 축제나 부락제 같은 걸 잘 유지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만화가 주호성의 웹툰 '신과 함께'도 화제에 올랐다. 저승사자와 성주신, 조왕신, 측신, 철융신 등 무속에 등장하는 여러 신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그려낸 이 만화는 특히 지난해 연재한 '이승편'에서 오래된 집을 철거하려는 개발업자와 집을 지키는 여러 신의 싸움을 묘사해 인기를 얻었다. 이 교수는 "무속에서는 사물 하나 하나에 모두 신이 있다고 본다"며 "나무 한 그루 함부로 자르면 안 된다는데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쉽게 무너뜨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제일 오래된 공부이며 중단하지 않고 이어온 공부"인 무속 연구를 더 이상 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번 책은 그의 샤머니즘 연구를 집대성하는 마지막 저작인 셈이다. 대신 분석심리학 강의에는 좀더 열성이 났다. 한길사에서 낸 분석심리학 3부작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와 자기실현> 을 중심으로 3월 말부터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분석심리학 강좌를 연다. 자기와> 아니마,> 그림자>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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