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끝에 동생이 조산을 했다. 모두가 정신 없는 와중에 제부도 아니면서 글썽이는 눈으로 동생을 쳐다보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아빠, 어쩌다 그는 딸이 내지르는 비명을 어금니 꽉 깨물고서 지켜보는 친정아비로 저리 비틀 서 있나. 얼마 전 아빠의 책상서랍을 뒤지는데 묘하게 생긴 열쇠고리 하나가 만져졌다.
플라스틱 소재의 기념물이었는데 표면에 쓰인 글귀가 이랬다. 축! 제1회 동일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기념. 1984년 2월. 퇴직할 때까지 한 방직공장에서 40년 가까이 솜과 솜 트는 기계와 솜 틀어지는 소리와 더불어 공장 언니들과 함께했던 아빠. 그때만 해도 공부와 노동을 병행하겠다며 매년 2,000명 정도씩은 입학을 했으나 졸업생은 그에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책상이 싫어 떠나고 공순이가 싫어 떠나는 언니가 있는가 하면, 까딱 졸았다가 기계 속으로 손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로 손을 잃고 의수를 얻은 채 반 강제로 떠나기도 했다는 언니들. 언니였던 그들이 아줌마로 늙어가는 세월 속에 아직도 아빠를 찾는 이들이 있다.
급한데 꼼꼼했으니 상사로는 최악이었을 터, 무슨 연유로 이토록 오래 인연일 수 있는가 물었더니 글쎄 꽃분홍색 립스틱 때문이라나. 부지불식간에 손을 놓친 것도 황망한데 그 손에 슬그머니 화장품을 쥐어주던 철없는 아빠의, 그러나 철을 앞선 오지랖을 떠올려 보건대 아무래도 그는 친정아버지를 업으로 태어난 모양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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