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 높고 생존해도 손발절단·피부괴사등 치명적 후유증
양손가락과 무릎 아래 다리가 없는 스물 넷 청년 이정준씨는 중학교 졸업을 앞둔 2003년 섣달 그믐 밤에 갑자기 고열과 구토를 시작했다. 그냥 감기인 줄 알았던 증상이 불과 2, 3일 만에 그의 손가락과 다리를 영원히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병명은 수막구균성 수막염. 세상에 알려진 감염병 중 사망까지 걸리는 시간이 24~48시간으로 가장 짧은 병이다. 생존해도 치명적인 후유증이 남는다. 건강한 사람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1981~2010년 발병 건수가 244명으로 파상풍(187명)보다 약 25% 많지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올해 처음으로 국내에 이 병을 예방하는 백신이 들어올 예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다국적제약기업 노바티스의 수막구균성 수막염 백신 '멘비오'의 국내 시판 허가 여부를 심사 중이다. 한국노바티스 측은 올 상반기 안에 허가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뇌 침투한 균이 온몸에 퍼져 패혈증
"밤에 자다가 머리가 아파서 깼어요. 기침하고 열이 많이 났어요. 약 먹으니 괜찮다 싶어 다시 누웠는데, 베개에 와락 토해버렸어요. 밤새 구토와 설사를 계속해서 아침에 식구들이 절 응급실로 데려갔죠. 처음엔 누가 봐도 심한 감기였어요."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통증 때문에 발버둥치다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손과 다리가 검게 변해 있었어요. 시간이 갈수록 피부가 점점 벗겨지고 40도 넘는 고열은 해열제도 소용 없었죠. 한겨울에 온몸을 얼음팩으로 싸맸어요. 아무 것도 못 먹고 온몸에 약 바르고 붕대 감는 드레싱을 수시로 했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은 마음에 인공호흡기도 빼버렸죠."
응급조치로 다행히 목숨을 건진 이씨는 입원한 지 3개월 만에 거울을 봤다. 살이 썩어 떨어져나가 코가 없어졌고 귀와 입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8시간에 걸친 수술로 두 다리와 손가락들을 잘라내야 했다.
이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건 수막구균이다. 면역력이 약하거나 단체생활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이 균에 주로 감염된다. 수막구균은 인체 조직 중 수막에 유독 친화력이 높아 잘 침투한다. 수막은 뇌와 척수를 싸고 있는 비닐처럼 생긴 얇은 막이다. 수막구균이 수막으로 들어가면 뇌척수액이 늘면서 압력이 올라가 염증이 생기고 팽팽하게 부어 오른다. 두통과 구토, 목 경직, 고열, 시각이상 등이 이 때문에 나타난다.
이렇게 뇌수막염을 일으킨 수막구균은 온 핏속으로 퍼져 면역세포를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피부에는 자색 반점이나 수포가 생기고 심해지면 시커멓게 썩는 패혈증 상태가 된다. 이 과정에서 피가 뭉치면서 혈관을 막아 팔다리로 혈액 공급이 차단된다. 결국 이씨처럼 신체 일부를 절단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진다. 폐렴구균과 헤모필루스균도 뇌수막염을 일으키긴 하지만, 치명적인 패혈증까지 동반하는 건 수막구균만의 특징이다.
7명 중 1명이 사망
"무릎 아래 절단 부위에서 뼈가 살을 뚫고 자라날 때마다 잘라내고 의족을 맞췄어요. 처음 의족 신고 걸을 땐 맨 무릎으로 거친 아스팔트 바닥을 쓸고 다니는 느낌…. 아프다는 표현만으로는 너무 부족해요.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정말 지옥 같았어요."
발병 후 7개월이 지나서야 퇴원한 이씨는 온몸이 굳어 학교는커녕 집 밖에 나가기도 힘들었다. 귀 연골을 떼다 이마에서 살을 끌어내려 코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자신이 왜 갑작스레 장애인이 돼버렸는지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무엇보다, 억울했다.
"이 병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지금도 절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화상을 입었을 거라고 생각하죠. 외국엔 백신이 있고, 우리나라엔 없다는 것도 그땐 전혀 몰랐어요. 병을 조금이라도 알았거나 예방접종을 했다면…."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수막구균성 수막염에 걸릴 경우 치료를 받더라도 7~10명 중 1명이 사망한다. 다행히 생존하더라도 5명 중 1명에겐 사지절단, 뇌 손상, 피부괴사, 청력상실, 발작, 마비 등 치명적이고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는다. 가능한 빨리 특정 항생제를 투여하는 게 최선이지만, 조기진단이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발병 초기엔 두통이나 고열 등 감기나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증상만 보이기 때문이다. 몸이 경직되고 발진이 돋는 등 수막구균성 수막염의 전형적인 증상은 첫 증상 이후 13~22시간이 지나야 나타난다. 결국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국내 연 최대 발병 38명
이씨는 자원봉사 대학생들 도움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호남대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가 지난해 졸업했다. 공부를 하고 대학을 다니면서 조금씩 세상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아이들 돌봐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운전면허도 땄고, 아르바이트도 했다. 자신을 남달리 쳐다보는 눈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가 받는 마음의 상처는 여전하다.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지만, 장애인을 환영하는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으면 좋겠어요. 국내에 많이 알려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예방접종을 하고, 실제로 이 병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생기고 있는지도 정확히 집계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진국의 수막구균성 수막염 발병률은 10만 명 당 0.5~4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질병관리본부는 국내에서 매년 적어도 250~2,000명의 환자가 생길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실제로 보고된 환자는 2001년 이후 연 1~38명이다. 전문가들은 조기진단을 놓쳤거나 다행히 항생제를 빨리 투여해 치료된 사례까지 치면 국내 수막구균 감염 건수는 보고된 빈도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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