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추울 때 신는 부츠를 한 켤레 샀다. 먼저 백화점에 가서 미리 신발을 신어보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똑같은 상품을 찾아 주문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똑같은 신발을 인터넷으로 살 때 훨씬 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사면 가격 할인은 물론 사은품도 몇 가지 주고, 다음에 또 그 쇼핑몰을 이용할 때 쓰라고 포인트까지 적립해주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다 합치면 신발가게에서 살 때보다 굉장히 많은 돈이 절약된다.
그리고 인터넷 주문서 가장 아래에 보니 내가 산 가격에 2,000원만 추가하면 상품을 당일에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보인다. 단돈 2,000원에 내가 산 신발이 그날 바로 배송된다고 하니 마음이 즐거워졌다. 쇼핑몰에 있는 설명을 읽어보니 당일배송은 그 쇼핑몰이 계약을 맺고 있는 오토바이 퀵서비스 업체를 통하는 것이다. 고객이 주문을 하면 쇼핑몰은 상품을 오토바이에 실려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주문을 마치고 보니 2,000원에 오토바이 퀵서비스라니 너무 싼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쇼핑몰에서 한 번에 출고하는 상품이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에 오토바이 한 대에 신발상자 여러 개를 싣고 배송한다면 그만한 가격이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이 든 건 인터넷 때문이다. 내가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인터넷으로 돈을 내고, 인터넷을 통해 보이는 감사 인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무척 빠르고 편리하다. 게다가 돈까지 절약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바로 사람이다. 물건은 누가 만드나? 사람이다. 그 물건을 파는 것은? 사람이다. 배송료 2,000원에 오토바이를 몰고 내 앞에 상품을 전달한 것은? 그 역시 사람이다. 인터넷은 바로 이런 행위를 전부 네모난 모니터 안에 가두었고 마치 음료수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꺼내듯 관계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그 관계 속에서 되도록 사람을 생각하지 않도록 몰아간다.
말 꺼내기도 새삼스럽지만 우리는 언제나 더 빠르고 편리한 것을 원하고 무엇이든 그렇게 되도록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사람들은 금방 거기에 익숙해졌고 이제 그 전으로 되돌아간다는 건 생각하기 힘든 시대에 산다. 느리고 불편하게 살다가 빠르고 편리해지는 건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그 반대는 곧장 신호가 온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그 뒤에는 늘 사람이 있다는 걸 잊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 책방만 하더라도 서울에선 이제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학교 다니던 19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동네에 책방이 많았다. 새 책 파는 곳은 굉장히 많았고 헌책방도 골목마다 꽤 있었다. IMF시기를 거치면서 다른 작은 가게들과 함께 책방도 자취를 감췄다. 발 빠른 헌책방들은 인터넷에 책을 등록해서 팔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마저도 경쟁이다. 인터넷에 책 제목만 입력하면 각 헌책방에 있는 목록을 받아와서 가격비교까지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헌책방 중에서도 가장 싸게 파는 곳을 골라 주문을 넣는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대형 인터넷 서점도 헌책방 시장에 뛰어들었다. 인터넷으로 책 팔지 않는 작은 책방들은 점점 운영이 힘들어진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람 얼굴을 보고 책 사는 걸 좋아한다. 내가 원하는 책이 당장 가게에 없더라도 시내까지 멀리 나가지 않고 동네에 있는 작은 책방에 들러 책을 보고 사는 게 좋다. 책이 없으면 책방 일꾼에게 갖춰달라고 부탁을 하면 된다. 그러면 하루나 이틀 뒤에 그 책을 살 수 있다. 물론 자리에 앉아서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몇 시간 만에 책을 받아 보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불편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그와 함께 몇 마디 이야기하는 동안 내가 사는 물건 뒤에 있는 사람 냄새를 느낀다.
비단 물건을 사는 일뿐만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 거기서 사람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작고 소중한 것이 없어지지 않는다. 동네 책방, 헌책방, 작은 구멍가게, 학교 앞 문방구, 그리고 그보다 더 작고 귀한 것들이 많다. 거대한 것, 빠르고 편리한 것에서 눈을 돌려 늘 똑같이 거기 있는 사람을 보면 어느새 마음 한 구석에 뜨끈한 밥 한 그릇 담아 올려놓은 것처럼 세상은 여유롭고 평화로울 것이다.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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