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교사로 재직하다 2010년 퇴직한 이모(62)씨. 퇴직 무렵엔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막상 일을 그만 두니 여유롭게 즐기면서 살 것이라는 기대는 금세 사라졌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내와 부딪치는 일도 많아졌다. 뭘 해보려 해도 기술이 없는데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망설여진다. 아직 미혼인 막내 아들의 결혼자금도 걱정이다. “연금을 받고 있긴 하지만 풍요롭지는 않아요. 그냥 열심히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무엇 하나 준비해놓지 못한 게 후회됩니다.”
주변에 흔한 은퇴자의 모습이다. 창업을 하자니 두렵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자니 부족하다. 사람을 새로 사귀는 것도 쉽지 않고, 가정에서도 ‘잔소리꾼’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이처럼 ‘준비 없는 은퇴’는 환영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지만,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은퇴 준비는 미흡하다 못해 낙제점 수준이었다. 서울대노화고령연구소와 메트라이프생명이 2일 발표한 ‘메트라이프통합은퇴준비지수’(MIRRI)에 따르면, 베이비부머의 은퇴 준비 점수는 100점 만점에 62.22점에 그쳤다. 은퇴 베이비부머 3,783명을 대상으로 재무, 건강, 심리, 사회적 관여 등 4가지 영역에서 설문한 결과다.
준비가 가장 미흡한 부문은 ‘은퇴 후 생활자금’(재정)으로 52.6점에 불과했다. 특히 4명 중 1명(26%)은 은퇴자금 마련을 위한 저축 및 투자 계획을 전혀 세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3층 보장구조인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모두 갖춘 경우도 15%에 그쳤다.
건강도 낙제점을 겨우 면한 수준인 66.36점에 그쳤고, 행복감을 나타내는 심리 지수도 61.3점에 불과했다. 가족과의 관계, 여가생활, 새로운 모임 참여, 친구 등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사회적 관여 영역이 그나마 68.62점으로 높았으나 이 역시 “훨씬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연구책임자인 한경혜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은퇴 준비가 비교적 양호한 베이비부머는 14.7%에 불과했다”며 “한국의 중년층은 은퇴 설계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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