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이 싼 값에 양질의 밥을 먹을 수 있는 노점 수레를 만들고 싶어요.", "오래된 물건과 거기 깃든 옛 이야기를 함께 수거하는 수레는 어떨까요?"…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동 사회적 기업 문화로놀이짱. 문화로놀이짱의 '어디든 가는 수레 만들기' 워크숍에 참가한 20~30대 청년 10명이 머리를 맞대고 수레의 활용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어디든 가는 수레 만들기'는 실업난에 직면한 청년들이 제작비가 적게 들고 어디로든 끌고 갈 수 있는 수레를 가게와 작업실 등 자립의 수단으로 삼도록 장려하는 프로젝트다. 참가자들은 지난달 10일부터 매주 수레의 역사, 수레 디자인 방법 등의 강연을 들으며 아이디어를 키워 왔다. 이날은 각자 디자인한 수레에 대해 발표하고 현직 디자이너의 조언을 받는 자리였다.
이들이 고안한 수레의 용도는 '밥집'부터 '연극무대'까지 다양했다. 우울한 현실을 극복하고 답답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열정도 담아냈다. 지난해 2월 성공회대 사회학과ㆍ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명랑 백수'로 지내고 있는 이상은(26ㆍ여)씨는 대학 재학 중 식비가 부담스러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싸고 영양가 높은 주먹밥을 파는 교내 노점을 차렸던 경험을 살렸다. 자신이 만든 주먹밥과 파스타 등의 음식을 팔고 금요일마다 자취생의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법을 가르쳐주는 노점 수레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씨는 "대학생과 백수들이 가난해도 밥은 제대로 챙겨 먹도록 돕자는 취지"라고 했다.
가톨릭대 문화콘텐츠학과 06학번인 엄윤정(25ㆍ여)씨는 집에 가도 맞아줄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소통의 수레'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외로운 손님들의 사연을 들어주는 일종의 노점 수레다. 엄씨는 "사회적으로 SNS 등 소통의 수단은 발전했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소통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며 "이 수레를 통해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3년간 인테리어 디자이니로 일한 박진아(28ㆍ여)씨는 버려지는 물건들을 모아 정감 있는 물건들로 바꾸는 고물상 수레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이 물건을 빨리 소비하도록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환경을 해치는 데 일조하는 것 아닌가라는 반성을 한 게 계기였다. 박씨는 "딸이 시집 갈 때 친정 엄마로부터 선물 받은 재봉틀처럼 고물상 수레를 통해 이야기가 담긴 물건들을 수집해 다시 디자인한 후 필요한 곳에 기부하거나 판매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워크숍을 기획한 안연정 문화로놀이짱 대표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이 달 초 소셜펀딩을 통해 제작비용을 모은 뒤 한달 간 실제 수레를 만들어 세상에 나설 계획이다. 봄엔 대학 캠퍼스, 도시 번화가, 동네 골목 곳곳에서 돈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수레의 도전이 시작된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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