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폭설이 내린 1월 31일 오후 숙명여대 앞 A부동산중개사무소. 거친 눈보라를 뚫고 찾아온 이 학교 3학년 이모(24)씨가 매물 현황 판을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씨는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표한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의 1순위 입주대상자로 선정됐다. 최대 7,000만원의 전세금을 낮은 금리로 빌릴 수 있게 돼 방 값 부담을 덜었다고 기뻐했지만, 현실은 생각과 크게 달랐다.
그는 이날 방문한 5곳의 중개업소에서 모두 "전세임대 조건에 맞는 집이 없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A부동산 관계자는 "대학가는 월세 위주여서 전세 매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며 "오늘 하루에만 3명의 학생이 전세임대주택을 찾았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모두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이씨는 "개학이 다가오면서 학교 근처에 남아있는 방도 많지 않다"며 "전세임대주택 입주자격을 포기하고 월셋방이나 빨리 알아봐야겠다"고 허탈해했다.
경기 안양대 4학년 김모(29)씨도 최근 1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발 품을 팔았으나 LH가 요구하는 조건의 전세임대주택을 구하지 못했다. 김씨는 "2.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주대상자로 선정돼 뛸 듯이 기뻤는데, 집 구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요건에 부합하는 주택은 거의 없고 간혹 찾더라도 재채기 소리에 무너질까 걱정될 정도로 낡아 살기 힘들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2주전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이 인기리에 마감됐지만, 정작 당첨 학생들은 집을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정부가 대학가의 주택공급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비현실적인 조건을 내건 탓이다. 며칠 전 부리나케 전세임대주택의 보증조건 일부를 완화하고 보증절차를 간소화하기로 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전세임대주택은 입주대상자로 선정된 대학생이 직접 거주할 전셋집을 구해오면 LH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대신 체결하고, 대학생에게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입주 보증금 100만~200만원, 월세 7만~17만원)으로 재임대하는 제도.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집은 1인 가구 기준 전용면적 40m² 이하, 지원 보증금 최대 7,000만원(수도권 기준), 부채비율(집 값에서 근저당과 보증금 등을 합산한 금액 비율) 90% 이하여야 하는 등 조건이 무척 까다롭다.
이런 요건을 갖춘 전셋집을 대학가에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학가는 하숙 원룸 등 월세 위주의 임대가 대부분인데다, 전용면적 40m² 이하도 드물다. 또 오피스텔의 경우 취사시설과 화장실 등을 갖춰 건축물관리대장에 주거용으로 분류돼 있으면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만, 보통 대학가 원룸은 상가를 개조해 만들어 주거용이 아닌 근린생활시설인 탓에 대상이 될 수 없다. 한국외국어대 앞 S공인중개사 조모(55)씨는 "집주인들 입장에선 월세로 내놔도 잘 나가는 집을 굳이 전세로 돌릴 이유가 없다"며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알고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사실 이런 문제점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LH는 지난해 10월 시범사업을 통해 전세임대주택1,000채를 공급하려 했지만 계약에 성공한 사례는 107건에 그쳤다. 당첨자가 고른 전세주택이 기준에 미달돼 계약 포기자가 무더기로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9,000명의 당첨자를 발표한 지 12일이 지났지만 LH가 실제 전세계약을 맺은 건 109건에 불과하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정부가 직접 전세주택을 매입해 임대하거나 매물 정보를 대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LH 관계자는 "시범사업 당시 학기 중이라 매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방학기간으로 일정을 앞당기고 일부 조건도 완화했다"며 "정부와 협의해 대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노경진 인턴기자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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