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수치스러운 침묵을 깨야 할 때다."
알렝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1월 31일(현지시간) 시리아 유혈 사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앞서 "유엔이 고통 받고 있는 시리아 국민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국제사회가 시리아 제재 결의안을 둘러싼 이견을 잠시 미뤄두고 시리아 국민을 향해 분명한 지지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동참을 호소했다.
지난해 3월 반정부 시위 발발 이후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5,4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시리아 사태가 갈수록 악화하자 유엔 안보리가 제재 결의안에 대한 본격 논의에 착수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결의안에는 즉각적인 유혈 진압 중단과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권력 이양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불과 8㎞ 떨어진 교외지역에서는 정부군과, 탈영병 등으로 이뤄진 자유시리아군(FSA)이 치열한 교전을 계속하고 있는데 지난달 30일 하루에만 홈스, 다라, 이드리브 등에서 민간인 등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에 국제사회가 가까스로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유엔 등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재정 위기 해결에 손발이 묶인 유럽이나 대선 정국에 돌입한 미국에게 시리아 사태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그만큼 시리아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는 자기 반성이라고 외신은 지적했다.
결의안을 주도한 아랍연맹(AL)도 지난해 말 시리아에 감시단을 보냈지만, 유혈 사태를 줄이기는커녕 아사드 정권에게 면죄부만 제공했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크리스 필립스 런던대 중동 전문 교수는 "AL 감시단이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아사드는 이를 시위 탄압을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번 주말 열리는 안보리 회의에서도 결의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난해 10월에도 러시아와 중국은 무기 금수, 자산 동결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시리아의 맹방 러시아는 "시리아 사태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일치된 입장을 찾을 필요가 있다"면서도 군사 개입과 제재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결의안을 밀어붙이면 사태가 악화할 것'이라는 게 표면적 이유지만, 아사드 정권과 맺은 수십억달러 규모의 무기계약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유엔 제재가 단행되면 시리아에 무기를 수출해 온 러시아가 50억달러(5조 6,200억원)규모의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바오둥(李保東) 유엔 주재 중국대사도 "중국은 정치적인 대화를 통해 시리아 문제의 적절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다.
시리아 사태 개입을 주장하는 미국 등은 군사 개입을 차단하는 내용을 결의안에 담아 러시아와 중국을 설득할 예정이지만 이번에도 결의안 채택은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유엔의 한 당국자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표결로 가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해 시리아 사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