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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교동도 대룡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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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교동도 대룡시장

입력
2012.02.0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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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유배된 듯, 빛바랜 정경에 끌리다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차 싣고 10여분 거리의 섬까지 뱃삯 1만 8,300원이다. 인천 강화군 교동도행 카페리. 편도 요금이니 꽤 비싸다. 그런데 비싸단 생각이 일지 않는다. 심리적 거리 탓이다. 탄창 끼운 소총을 비껴 맨 군복들 뒤, 철조망 친 바다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황해도 연백 땅. 뭍으로부터의 거리감을 한껏 증폭시키는 풍경이다. 과거에도 섬은 외졌던지 이곳은 왕의 피붙이들의 단골 유배지였다. 곳곳에 묻은 이씨(李氏)의 잿빛 이름들은 왕 노릇 하다 쫓겨났거나 형제가 왕이 됐거나 왕의 자리를 노리다 축출된 이들의 것이다. 2012년 1월의 마지막 주말. 교동도엔 40년, 혹은 50년 저쪽의 바랜 시간들이 긴 유배를 견디듯 머물러 있었다.

"계세요?" 교동면사무소 소재지 대룡시장의 작은 시계방. 교동의원 원장 선생님이 문을 두드렸다. "이것 좀 빼 드리세요." 원장 선생님이 밀고 온 휠체어엔 류머티즘을 앓는 할머니가 앉아 있다. 아흔 살쯤 돼 보였다. 관절염 탓에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에 가락지가 딴딴하게 박혔다. "비누칠 해도 안 빠져. 닛빠로 좀 끊어줘." "금이면 몰라도 이걸로 안 잘릴 텐데요…" 시계공이 난처해 한다. "이거 한 돈 반짜리 금이야! 해 줘." 접안 렌즈를 낀 시계공이 손가락을 죄고 있는 가락지에 금속 날을 댄다. 짤깍. "됐네, 됐어." 숨 죽이고 있던 원장 선생님과 지나던 농약가게 아저씨가 함께 손뼉을 친다. 추운 시장 골목에 잠깐 봄 같은 훈기가 돌았다.

"전엔 인천 연안부두에서 8시간 걸렸어. 섬에 들어오는 데 말이지. 오고 가는 사람이 없으니 변할 게 있나. 내가 40년 전에 이 시계방 차릴 때랑 그대로야. 근데 요샌 이런 누추한 데 뭐 볼 게 있다고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시계공 황세환(74)씨는 교동도 토박이다. 농사 짓던 그는 스물 네 살 되던 해 다리를 다쳐 시계공이 됐다. 두 평이 채 안 되는 시계방에 앉아 스쳐가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수십년 지기 시장 사람들이 찾아와 안부를 나누다 갔다. 간간이 카메라를 맨 젊은이들과 알록달록 등산 패션의 트레킹꾼들이 기웃대며 지나갔다. 수리를 맡기러 오는 이는 없었다. 황씨는 "집에 있으면 몸만 무거워져서 그냥 나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쟁과 고단했던 섬 생활과 교동도의 때묻지 않은 인심을, 늙은 시계공의 잔잔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배달시킨 커피는 알싸하게 달았다. 시계가 가득한 방 안에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사진 마니아들 사이에서 '빈티지한' 출사지로 알려졌던 대룡시장은 몇 차례 TV에 나오면서 제법 유명해졌다. 도회지에서 사라져버린 1970, 80년대 일상의 풍경이 이 시장의 매력. 칠판에 백묵으로 외상값을 적어 놓은 구멍가게, 노끈 감은 나무 창틀에 청테이프를 바른 미용실 유리창, 울퉁불퉁 이가 맞지 않는 보도블럭, 언젯적 것인지 아톰이 그려진 책가방을 걸어 놓은 잡화상 등등. 남루함을 감출 생각 없는 시장의 표정이 세련되고 화려한 것에 중독된 도시 사람들의 눈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신발 벗고 들어가는 의자 두 개짜리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겠다고, 서울서 예까지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고 했다. 이발소 문은 닫혀 있었다.

"어휴, 이발소 영감님. 설날부터 일주일 내리 약주를 드시더라고. 아직 앓아 누워 있을 걸?"

디글디글한 주름의 다방 마담은 이발소집, 호프치킨집, 여인숙집 주인 아저씨들의 음주 내력을 줄줄 꿰고 있었다. 김치 담그던 참이었는지 손톱에 붉은 물이 들어 있다. 3,500원에 쌍화차 한 잔. 시장 골목의 시시콜콜한 스토리는 덤이다. 황해도에서 피난 온 철물점 주인 영감님이 죽어서 사위가 가게를 물려받았는데, 그는 관광회사 차린다고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다가 망해서 섬을 떴는데, 박통 때 쌀 열 가마니 값이던 점포세가 지금도 그대로인데도 찾는 이가 없다는, 그런 계통 없는 가족사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와 얽혔다. 듣고 있는 게 힘들어질 때쯤 대학생으로 뵈는 젊은이들이 머뭇대며 다방 문을 열었다. 마담의 지칠 줄 모르는 입이 그리로 옮겨갔다.

면적 47㎢. 1,300여 세대가 살기에 교동도는 작지 않다. 그래서 집집마다 너른 농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농사는 쇠락해가는 듯 보였다. 정미소의 고무벨트가 축 늘어진 채 먼지를 쓰고 있었다. 솜 넣은 몸뻬 바지를 수선하던 양복점 주인 김경수(71)씨는 "젊은 사람은 섬을 떠나고 남은 사람은 늙어가니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장 사람들은 머지않아 개통될 다리에 기대를 거는 듯했다. 교동도 연륙교는 올해 말 완공 예정이다. 하지만 다리가 연결된 뒤에도 대룡시장의 시간이 천천히 흐를 수 있을까. 한 무리의 등산복 차림이 왁자지껄 떠들며 골목을 쓸고 갔다. 빈티지와 남루함의 고요한 합일에 균열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교동도=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교동도 나들길… 역사의 흔적과 해후, 정겨운 살림살이와 대면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도보여행 코스인 강화도의 걷는 길 이름은 '나들길'이다. 강화군에 속하는 교동도에도 두 개의 나들길 코스가 나 있다. 제9코스 '다을새길', 제10코스 '교동코스'다. 대룡시장으로 떠난 시간 여행에 곁들여 걸어볼 만한 길이다.

다을새길은 교동도 카페리가 닿는 월선포 선착장에서 출발해 교동향교, 화개산, 대룡시장, 교동읍성, 동진포 등을 돌아 다시 선착장까지 이어진 16㎞ 길이다. 6시간 가량 걸린다. 외진 섬에서 뜻밖에 역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월선포를 출발해 숲길을 걸으면 국내 최초의 향교인 교동향교의 솟을문과 마주친다. 고려 충렬왕 때 안향이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세운 것이다. 군사시설이었던 화개산성과 삼도수군통어영은 흔적만 남아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교동코스는 교동도 사람들의 정겨운 살림을 엿볼 수 있는 길이다. 너른 저수지 농가 마을, 소담한 포구 등을 돌아보는 17.2㎢ 코스로 한 바퀴 도는 데 6시간 가량 걸린다. 이 코스는 '머르메 가는 길'로도 불린다. 머르메는 동산리의 자연부락 이름으로 가장 큰 마을이라는 뜻의 두산(頭山)을 우리말로 푼 것이다. 흑백 사진첩 속에서 볼 법한 집과 농경지의 풍경이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문의 사단법인 강화나들길 (032)934-1906.

유상호기자 shy@hk.co.kr

■ 여행수첩/ 교동도 대룡시장

●강화도 하점면 창후리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카페리가 운항하는데, 썰물 때 너댓 시간은 배가 뜨지 않는다. 화개해운 (032)933-4268.

●교동도 월선포 선착장에서 대룡시장까지 마을버스가 운항한다. 10명 이상일 때 섬 내 다른 곳까지 버스를 빌려 탈 수 있다. 교동면사무소 (032)930-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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