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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화도 겨울 갯벌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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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강화도 겨울 갯벌 여행

입력
2012.02.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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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컥한 개흙이 복사뼈를 빨아들이는 썰물의 바다. 지구가 가진 중력의 검질김을 맛보려면 갯벌에 나가볼 일이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 딱딱한 밑창을 댄 구두,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뒤꿈치 각질까지 딛고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말랑말랑한 갯벌의 감촉은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치밀어 오르게 한다. 매운 바람에 마음의 각질이 두꺼워진 계절, 말캉한 윤기를 은은하게 두른 강화도의 갯벌로 갔다.

강화도 갯벌은 한강, 임진강, 예성강이 제각기 수백 리를 흘러와 바다에 몸을 푸는 하구다. 강줄기에 터를 잡은 수천만의 인간과 무량수의 동물이 뱉는 노폐물도 함께 흘러와 쌓인다. 맑은 들숨이 아니라 탁한 날숨의 충적토. 하지만 이곳에도 삶이 넘친다. 헤엄치는 생명과 옆으로 기는 생명, 숨구멍을 뚫고 솟는 생명, 흙에 주둥이를 박으려고 활강하는 생명이 더불어 산다. 깊이 숨어서, 모두들 겨울을 나고 있었다.

인파가 사라진 갯벌은 적요했다. 간조의 바다가 무연히 멀어지며 수평선을 끌어당겼다. 해안선까지 6㎞가 넘는다는 남서쪽 갯벌. 날이 추워서인지 고무박을 끄는 조개꾼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생업의 풍경이 없는 갯벌은 한층 차가운 질감이다. 고도를 높이지 못하는 겨울의 태양이 물컹한 흙에 회색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먹이를 찾아 내려앉은 철새의 걸음이 반사된 태양빛에 되똑거리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섬의 북쪽, 갯벌의 폭이 비교적 짧은 곳으로 차를 몰았다. 바다의 모습은 여일한 듯했다. 그런데 오래 보고 있자니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을 반사하는 갯벌의 윤기는 다를 바 없지만, 거기엔 왠지 모를 삭막함이 서려 있었다. 그 다름의 느낌이 형체로 떠오르지 않아 갑갑했다. 강화도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이환기(65)씨의 얘기에서 그 갑갑함의 꼬투리를 찾을 수 있었다. 듣기가 편치 않은 이야기였다.

"이쪽 농공단지가 산업단지로 형질 변경되면서 염색 공단이 들어섰어요. 폐수를 정화한다고 화학물질인 개미산을 쓰는데, 그게 사실 독에다 독을 치는 겁니다. 이쪽 갯벌은 이미 다 죽었어요. 허파로 치면 30~40%가 괴사한 거죠. 황량한 느낌? 그거 염생식물과 갑각류의 숨구멍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강화도의 갯벌은 공단 폐수보다 훨씬 큰 규모의 위협을 맞았다. 정부는 강화도를 둘러싼 거대한 조력발전 단지를 만들 계획이다. 들고 나는 물을 가두는 댐 형태의 발전 단지다. 물의 흐름을 막으면 갯벌 생태계가 파괴될 것은 자명한 이치. 이 계획은 '친환경'의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계획을 환영하는 이런저런 이익단체가 내건 현수막으로 섬이 지저분했다. 서둘러 민통선 지역을 벗어나야 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갯벌에 밤이 내렸다. 물컥한 개흙이 초승달 달린 하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이 보여주지 못하는 종류의 윤택함이 컴컴한 갯벌을 적셨다. 적막하고 평화로운 풍경. 하지만 등 뒤의 술추렴 소리를 벗어날 순 없었다. 목 좋은 자리마다 새우 굽는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시인 함민복의 표현대로 "맨발로 지구를 신고" 걸을 수 있는 갯벌이었다.

●강화도 갯벌의 면적은 353㎢에 달한다. 특히 여차리-동막리-동검리를 잇는 남단의 갯벌은 조수 간만의 차가 7.3m로 서해안에서도 가장 넓은 뻘밭의 풍경을 보여준다. 여차리에 갯벌의 생태를 보여주는 강화갯벌센터가 있다. 문의 (032)937-5057.

강화도=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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