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눈. 준비를 했다지만 차나 사람이나 갈피 몰라 하는 건 매한가지라 양재역에서 발 구르며 택시 잡기를 30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앞에 와 서는 택시 한 대가 있었다. "강남 여자이신 것 같더라고요." 50대 중반쯤 되었을까, 기사 아저씨는 극진한 존댓말로 날 반겼다. 눈길이라 울렁거릴 수 있으니 천천히 가겠다며 아저씨는 라디오 주파수도 클래식에 맞췄다.
"집이 과천인데 반대면 곤란하니까 골랐지요. 강남 강북, 난 딱 알아요." 아저씨의 과한 친절이 느끼할 지경이라 몇 번을 미끄러졌던 나는 택시가 행선지로 들어서는 걸 보며 내가 '일산 여자'임을 굳이 밝혀야 하나 불편해져서는 손톱이나 뜯는데 느닷없이 탕탕, 누군가 차를 치는 것이었다.
이내 멈춰선 차. 그로부터 일방통행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수위 아저씨와 몰랐는데 어쩔 거냐는 기사 아저씨 사이에 쌍방으로 쌍욕이 오가기 시작했다. 이런 개×끼야! 이런 씨×놈아! 느닷없이 벌어진 싸움이라서 인지 그보다 더 창의적인 욕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욕에 지친 그들이 내민 비장의 카드가 있었으니 이른바 주제파악 놀이랄까. 택시나 모는 주제는 또 뭐고 경비나 보는 주제는 또 뭐람. 뒤엉키지는 않았으니 렌즈에 초점을 맞추자 눈과 함께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겨울 달력 풍경이 된 그들. 그 와중에 잊지 않으려고 사진이나 찍는 나의 주제는 그래, 누가 시인 아니랄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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