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 김진숙(45) 사무관(5급)은 초등학교 2학년 딸 지민(가명)이가 울며불며 "학교 안 가겠다, 전학시켜 달라"고 하는 말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다. 친구들로부터 "엄마가 버렸다" "고아원에서 왔다"고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민이가 생후 26개월 때 입양된 사실을 친구가 알고 반에 퍼뜨린 것.
김 사무관은 지민이에게 1학년 때 입양사실을 알려주고, 입양가정 모임과 캠프에 데려가며 입양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줬었다. 김 사무관은 "딸이 입양에 대한 편견이 없었는데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입양이 나쁜 거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담임 선생님의 반응도 거슬렸다. 김 사무관에게 전화를 해서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지, 왜 아이(지민)이에게 입양 사실을 이야기하셨느냐"며 책임을 김 사무관의 가족에게 돌렸다. 마치 쉬쉬해야 할 일을 발설했다는 투였다.
그러나 복지부에서 입양제도 업무를 담당하며 많은 입양가족을 만났던 김 사무관의 생각은 달랐다. 입양아들은 어떻게든 진실을 알게 되고, 특히 청소년기에 알게 되면 자신에 관한 것을 주변 사람은 모두 알고 자신만 몰랐다는 상실감에 방황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민이는 혈액형 때문에 스스로 입양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
답답했던 김 사무관은 딸의 학교를 찾았다. 담임과 교장을 만나 복지부가 지원하는 '반(反)편견 입양교육'을 제안했다. 복지부가 교재개발비를 지원하고, 전문가로부터 교육받은 입양가정 부모가 자원봉사 형식으로 학교를 찾아 아이들에게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학교는 지난해 12월 지민이가 속한 2학년 학급은 강사에게 직접, 다른 학년들은 방송수업을 통해 모두 1시간씩 수업을 듣도록 했다. 강사로 온 목사 부인은 가족을 이루는 형태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소개하고 이 중 하나가 입양가정이며 불쌍하고 비참한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아이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수업시간에 입양가족 캠프사진을 본 아이는 "입양가족이 저렇게 많아?"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후 친구들은 지민이를 놀리지도 않았고 입양을 굳이 언급하지도 않았다. 김 사무관은 "입양 등 가족의 다양성을 정규 교과에서 제대로 다뤄줬으면 좋겠다. 그런 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다양성에 대한 포용도 생기고 입양에 나서기도 하고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체장애 4급으로 다리가 불편한 김 사무관은 2005년 "장애 아이를 입양해 감싸주고 싶다"고 남편에게 제안해 지민이를 품에 안게 됐다. 고교, 중학생 아들 2명과 지민이까지 자녀가 3명이다. 미숙아였던 지민이는 시신경이 발달하지 못해 시력이 좋지 않았고, 한번 국내 입양됐다가 다시 입양기관에 돌려보내진 아이였다. 하지만 교정과 치료로 현재는 생활에 지장이 없다. 공무원으로서 부담스럽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던 김 사무관은 "입양교육의 중요성을 알려달라"며 나섰다. 그는 "입양이 대단한 각오나 희생이 아니라 내가 가진 걸 조금 나눈다는 맘에서 시작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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