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국내 은행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수수료를 인하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촉발된 '금융탐욕'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내린 결정인지라, 인하 대상은 창구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관련 수수료 일부에 그쳤다.
그런데도 사회취약계층과 서민들을 위한 사회공헌으로 포장했고, 은행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읍소도 잊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이 실질 혜택은 거의 없는 '꼼수'라고 지적했지만, "더는 여력이 없다"고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은행들의 앓는 소리는 엄살로 드러났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은 수수료로만 5조원 가까이 벌어들였다. 사상 최대 규모다. 매 분기 엇비슷한 수준의 수수료 수익(1조2,000억원 가량)을 올렸으니 수수료 인하가 수익구조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은행들의 주장은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금융감독원은 31일 국내 18개 은행의 2011년 수수료 이익이 전년보다 11%(5,000억원) 늘어난 4조9,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수수료 이익이 가장 많았던 2007년(4조7,000억원)보다 2,000억원이나 많은 액수다. 특히 증가 폭이 5,000억원에 달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수수료 추가 인하 여력이 충분해 보인다.
결국 그간 은행들의 수수료 인하는 생색내기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금융소비자연맹은 최근 "ATM 수수료 인하에 따른 손실은 전체 수수료 수익의 1%도 안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고, 그마저도 일부만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은행연합회까지 나서 '친(親)서민'을 들먹이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ATM 수수료 인하가 사실인즉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이 인하 혜택을 체감하려면 은행들이 다른 수수료도 내려야 한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선진국보다 2배 이상 높게 책정해 매년 떼가는 펀드 판매보수(가입금액의 1% 가량) 등이 대표적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펀드, 보험, 대출 중도상환수수료, 외환관련 수수료 등 여전히 인하 여력이 있는 수수료가 많다"며 "은행들의 꼼수가 밝혀진 만큼 수수료 원가가 어떻게 책정되는지 금융당국이라도 나서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국내 은행들은 수수료 이익 증가에 힘입어 비이자 이익이 8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1조원) 늘었고, 순이익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15조원) 이후 최대인 12조원으로 29.2%(2조7,000억원) 증가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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