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통의상을 입은 인물이 두루마리를 펼치면서 개막을 알렸다. 홍콩 무협영화 감독 후진취안(胡金銓)의 세계적인 명작 '용문객잔'(1967)의 도입부를 인용한 듯한 장면이었다. 중국의 체조 스타 리닝(李寧)이 와이어에 매달려 하늘 위에서 뛰듯이 이동해 성화에 불을 댕기는 모습에선 누구나 눈치 챘을 것이다. 홍콩영화가 발전시킨 와이어 액션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것임을.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은 중국어권 영화에 대한 자부심을 표출한 듯해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아니나 다를까. 개막식은 중국영화의 자존심 같은 인물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의 솜씨였다.
올림픽은 영화감독들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근대 올림픽의 체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전설적인 다큐멘터리영화 한편으로 대변되곤 한다. 히틀러의 연인이었다는 소문과 함께 나치의 조력자란 비판을 받곤 했던 레니 리펜슈탈(1902~2003)의 '올림피아'는 종종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 다큐멘터리로 꼽힌다. 달리는 그림자들의 움직임과 수런거리는 듯한 가로수 잎의 떨림 등을 포착한 이 영화 속 마라톤 경기 영상은 손기정 선수 때문에 우리에게도 너무 친숙하다.
일본의 명장 이치가와 곤(市川崑ㆍ1915~2008) 감독은 1964년 도쿄올림픽을 담은 '도쿄올림피아드'(1965)가 대표작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승자보다는 패자에 포커스를 맞춘 이 수작 다큐멘터리는 적잖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의 패자 일본의 시각을 반영했다는 평가와 함께 일본의 부흥을 알리는 축제를 지나치게 패배주의적으로 그렸다는 비판을 일본에서 받기도 했다. '올림피아'와 '도쿄 올림피아드'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지금까지 공식 인정한 올림픽 영화 4편에 포함된다.
올해 런던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막식은 대니 보일의 몫이다. 39세 때 늦깎이 데뷔작인 '쉘로우 그레이브'(1995)로 단박에 영국 영화를 대표하게 된 그는 탐미적인 영상으로 상업적 매력을 발산하는 독특한 감독이다. 화면과 조응하는 섬세한 음악 선택 능력도 남다른 인물이다. 등장인물의 심장 박동을 전하는 듯한 음악이 인상적인 '트레인스포팅'(1996), 발리우드 영화의 요란스러움을 음악으로 수렴했던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는 그의 장기가 발현된 수작들이다.
아일랜드계로 웨일스에서 자라 영국의 간판 감독이 된 보일이 어떤 모습으로 올림픽 개막식을 지휘하게 될까. 영화 팬들이라면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되지 않을까.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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