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이 묻지 않도록 달아매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은 씻어도 나머지는 절대 씻지 말고 가마솥에 넣어 맑은 물로 삶는다. 일단 꺼내 식초, 장, 기름, 파로 양념을 하여 더러는 다시 볶기도 하고 더러는 다시 삶는데 그래야 훌륭한 맛이 납니다.'
이렇게 개고기 레시피를 설명한 사람은 귀양 간 다산 정약용이었다. 역시 귀양 신세인 형 약전에게 부친 편지에서 그는 '섬 안에 산개가 백 마리 아니라 천 마리도 넘을 텐데, 제가 거기에 있다면 5일에 한 마리씩 삶는 것을 결코 빠뜨리지 않겠'다고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처럼 물자가 풍부하지 않았지만 요즘 못지않은 식탐이나 미식문화가 있었다. 좋은 음식 찾아 먹고 심지어 음식으로 뇌물 받다 '패륜'으로 몰린 재상도 있었고, 농업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한 '소고기 금령'에도 불구하고 소고기에 침 흘린 선비도 적지 않았다. 저술가 김정호씨가 쓴 <조선의 탐식가들> (따비 발행)은 조선 지배계급의 음식문화를 다양한 일화를 위주로 소개한다. 조선의>
책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탐식가는 권력과 부의 맛을 밥상에서 느끼려 한 권세가들. 중종의 사돈으로 권세를 누린 김안로는 맛있는 개고기 요리를 바친 이들을 요직에 등용해 구설에 오를 정도로 개고기 탐식가였다. 인조 반정으로 공신에 오른 김자점, 화완공주와 함께 정조의 정적이었던 정후겸은 '갓 부화한 병아리'를 즐겼다. 하지만 이들의 탐식은 당시로서도 도를 지나친 것이어서 권력을 잃고 난 뒤 비판 받는 빌미가 된다.
진귀한 음식을 찾아 먹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대표적인 탐식가로 저자는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과 허균을 들었다. 특히 자신을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 한 허균은 누릴 수 없는 산해진미에 대한 욕심 때문에 조선 최초의 음식비평서라는 <도문대작> 까지 썼고 진미가 풍부한 남원이나 가림(공주) 같은 곳으로 임지를 바꿔달라는 로비까지 벌였다고 한다. 도문대작>
반면에 절제된 식사를 실천하고 이를 강조한 사람도 없지 않았다. 정약용, 이익, 이덕무 같은 이들이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부실해진 몸을 보양하기 위해 개고기를 즐기긴 했지만 직접 채소를 가꿨고 밥을 상추로 싸서 크기를 부풀려 먹으며 입을 다스렸다.
저자는 조선의 지배층이 가장 선호한 요리로 신선로를 든다. 책에 따르면 이 음식은 실은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지금도 농림부가 펴낸 <아름다운 한국음식 100선> 의 표지에 실려 있고 청와대 만찬의 대미를 장식할 때가 많다. 신선로 대신 저자가 한국 대표 전통 음식으로 추천하는 것은 도미면이다. 성종 말 함경도 의주 오랑캐를 물리치러 온 허종에게 그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 대접한 뒤 궁중요리로 정착되고 민간으로까지 널리 전파된 이 음식은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주러 온 장수에게 민초들이 정성껏 만들어서 바친'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조선 지배계층의 음식 문화를 두루 소개하며 저자는 '선비에게 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느냐는 물음이기도 하다. 책 서두에 실린 이덕무의 수신서 <사소절> 에서 그 답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본시 가난한 형편이고 먹는 양 또한 매우 적은데다 천성이 청검하고 체질이 취약하다. 언제나 분수를 알아 명복을 아끼고 먹는 것을 절제하여 건강을 꾀하려 했다.' 평생 맛난 음식을 맛봤다는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전 오도송처럼 남긴 글에서 꼽은 최고의 음식도 오이 생강 채소를 넣고 끊인 소박한 두붓국이었다. 사소절>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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