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들의 살인적인 등록금은 대학원도 예외가 아니다. 이공계에 비해 적다는 인문ㆍ사회과학 분야도 사립대는 한 학기 450만~500만원에 달한다. 이 돈의 8분의 1 가량만 내고 대학원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귀가 번쩍 뜨일 것이다. 단, 정규 석ㆍ박사 학위는 받을 수 없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N이 3월 문을 여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원' 과정이다. 현재 지원자를 모집 중인데, 전공 분야에만 천착한 기존 대학원 교육에서 벗어나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형 지식인'을 기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수유너머N 연구원인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제도권 밖에서 인문학을 연구해온 회원들이 보다 강도 높은 공부와 글쓰기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연구원 과정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의 기획은 수유너머N에서 2009년 시작한 '불온한 인문학'세미나에서 싹텄다. 국가 통제 아래 놓인 '학진 인문학'과 서비스상품처럼 소비되는 '교양 인문학'을 모두 비판하며 인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해답의 하나로 연구원이 제시된 것. 수유너머N 연구원인 정행복씨는 "정치, 사회, 문화, 예술 관련 8과목을 최장 4년 안에 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각 분과 학문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을 쌓고 사고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인문사회과학 연구원은 1년에 2학기, 학기당(16주) 2과목씩 개설돼 총 2년 과정으로 진행된다. 8과목을 모두 이수하고 졸업 논문까지 작성하는 '연구사 디플롬' 과정과 듣고 싶은 과목만 선택 수강하는 '일반과정'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연구사 디플롬은 여느 대학원처럼 출석일수를 따지고 과제물도 꼬박꼬박 내야 하며 논문을 통해 일정 수준의 연구 능력을 인정받아야 통과된다. 그러나 교육부에 등록된 교육기관이 아니어서 대학원 학위가 인정되는 건 아니다.
3월 5일 개강하는 첫 학기에는 이진경 교수의 강독과 문화평론가 고봉준씨의 19~20세기 예술과 모더니티 강연이 개설된다. 수강료는 과목당 35만원, 두 과목 모두 들으면 60만원. 모집 공고를 낸 지 보름 남짓 지났지만 반응이 상당하다. 정 연구원은 "지난달 14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알린 지 보름 만에 10여명이 등록했다. 1월 31일, 2월 14일 진행하는 연구원 소개 공개특강도 10일 만에 정원 80명이 찼다"고 말했다.
대학을 벗어난 인문사회과학 연구와 대중강연으로 국내 인문학 부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의 새로운 실험이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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