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금융지주와 산업은행이 31일 정부 공공기관에서 해제되자 "명분도 실익도 없는 일방통행식 결정"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산은 측은 "민영화 추진에 큰 날개를 얻었다"며 반기고 나섰지만 '대통령 측근' 배려에 따른 특혜 논란과 형평성 시비는 물론, 금융의 공적기능 강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산은 등을 공공기관에서 해제한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우선 민영화를 하려면 민간 은행들과의 경쟁을 통한 체질강화가 꼭 필요한데 공공기관에 묶여 있으면 아무래도 인력운용ㆍ예산집행에 제약이 불가피해 기업가치(투자매력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공공기관이지만 최대한 자율을 보장하는 현재의 '경영 자율권 확대기관' 신분으로도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여기에 이번 조치로 민영화 의지를 분명히 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도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당장 정부의 울타리를 벗어난 산은과 기은은 대환영 분위기다. 산은 관계자는 "비로소 민영화의 첫 발을 내디디게 됐다"고 반겼고 사실상 산은 등에 업혀 동반해제의 기쁨을 맞은 기은 측도 "이미 시장에서 외국계 은행과도 경쟁하는 상황에서 공정 경쟁 여건이 조성됐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시장과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당장 강만수 회장에 대한 특혜논란이 제기된다. 강 회장은 지난 17일 내부 경영전략회의에서 "자리를 걸고 공공기관에서 해제시키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정부에 강한 압박신호를 보내왔다. 선거를 앞둔 여론악화 우려 때문에 정부 내부에서조차 만류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강 회장의 뜻대로 됐다. 지난 수년간 해제를 요구했지만 번번히 좌절됐던 산은과 기은은 '해결사 강만수'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정부 지분이 절대적인 기관임에도 실세가 회장직을 걸겠다고 압박하면 해제해주고, (거래소처럼) 정부 지분이 없어도 기관장이 적극적이지 않으면 해제하지 않는 것은 장난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공공기관 탈출을 염원하는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정부는 이날 한국거래소의 해제 여부도 함께 논의했으나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요구가 없었고 ▦독점적 사업구조와 공적기능이 여전해 공공기관으로 유지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거래소 노조는 "민영화 예정기관이라는 이유로 해제한다면 조만간 복수 거래소 설립으로 독점 지위를 잃게 되는 거래소야말로 산은에 앞서 해제돼야 한다"고 반발했다.
금융의 공적기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불안한 실물경제를 뒷받침할 금융의 공적기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민영화 성공 자체가 의심받는 상황에서 해제를 강행하는 건 정부와 힘 있는 기관의 독단"이라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산은과 기은이 큰 역할을 담당하던 정책금융 기능은 앞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정책금융공사의 기능 재정립을 포함해 총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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