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대표적인 소비재 기업이었다. 주류(OB맥주)가 메인 업종이었고, 의류(제이크루 폴로 등)를 팔고, 외식 부문(KFC)에도 진출했다. 그런데 불과 10년 만에 중장비ㆍ담수설비 등을 주력으로 하는 중공업 그룹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두산의 마법'으로 불린 이 같은 변신의 비결은 다름아닌 인수합병(M&A)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부채비율이 600%에 달했던 두산은 23개 계열사를 5개의 주력기업으로 통폐합하고 부실사업은 과감히 정리했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끝내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선 두산은 M&A 전략을 택했다. 맨땅에 헤딩하기 보다는 원천기술을 가진 기업을 사들이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2006년과 2007년 영국 미쓰이밥콕(현 두산밥콕)과 밥캣(현 두산인프라코어인터내셔널)등을 잇따라 인수했다. 그 결과 2000년 4조5,000억원이던 매출은 2010년 24조6,000억원으로 6배나 뛰었고, 재계 서열도 톱 10안으로 진입했다.
M&A는 2000년대 들어 기업들의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IMF 때 호된 시련을 겪은 국내 기업들은 공격적인 M&A 대신에 수성과 수익창출에만 집착했다. M&A의 귀재였던 대우그룹이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수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몸을 사렸고, 설령 투자를 한다고 해도 주력 사업을 보완하는 소규모 합병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에는'M&A야말로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새롭게 확산되고 있다. 회사의 덩치를 키우고,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브랜드 파워까지 올리는 탁월한 전략으로 다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 STX 롯데 등 주요 그룹들이 대부분 M&A를 발판으로 덩치를 더욱 키웠다. 롯데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계 대형마트인 마크로의 점포망을 인수하고, 2009년 1월에는 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를 사들였다. STX는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2007년 글로벌 2위 크루즈 선사 야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하면서 재계 14위 기업으로 단숨에 발돋움했다.
최근 1~2년 사이엔 재계 선두그룹도 M&A에 적극적이다. 'M&A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는 경영 원칙을 지켜오던 삼성전자는 2009년을 기점으로 180도 방향을 틀었다. 전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개발 능력이 탁월한 벤처기업 쇼핑에 나서고 있는 것. 2010년에는 국내 의료기기 장비업체인 레이와 메디슨, 반도체 장비개조 업체 GES 등을 사들였고, 작년엔 네덜란드 디스플레이 연구개발 전문기업인 리쿠아비스타를 인수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약 5조원의 인수금액으로 현대건설을 품에 안았고, 기존사업과 거리가 먼 녹십자생명보험을 인수해 눈길을 끌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 등 M&A로 세를 불려온 SK는 지난해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며 그룹 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었다.
이 같은 M&A전략은 올해 더욱 주목 받을 전망. 유럽 재정위기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핵심기술을 보유한 우량기업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 대표적인 분야로 태양광산업을 꼽는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정책보조금 삭감 등으로 태양광 업체의 판도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자체 역량이 아직 부족한 국내기업들의 경우 M&A를 통해 일거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에다 IT와 바이오가 접목되는 BT(생명공학) 분야, 전기차 등과 관련된 자동차 부품 등도 유망 분야로 거론된다. 롯데 신동빈 회장의 경우 최근 임원회의에서"싼값에 매물로 나온 우량기업들에 대한 M&A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소 연구원은 "IT기업을 중심으로 특허 자산을 보유한 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등 M&A 전략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며 "올해처럼 경기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M&A전략이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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