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먼저 친구들한테 '기절 놀이'를 하자고 했어요. 제가 정신을 잃으니까 깨우려고 때린 거에요."
서울 성북구의 모 중학교 3학년 A(15)군은 자신이 매 맞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면서도 경찰관에게 폭행이 아닌 '기절 놀이'를 한 것이라고 우겼다. 친구들에게 맞아 코뼈가 부러지고 이틀 동안 감금을 당하고도 A군은 겁에 질려 3차례의 경찰 조사에서 계속 맞은 사실을 부인했다. 경찰은 "A군은 보복뿐 아니라 함께 다니던 또래 집단에서 자신이 쫓겨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B(15)군 등 10대 5명이 A군을 처음으로 폭행한 것은 지난달 28일.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와 함께 살며 학교에서 '왕따'처럼 지내던 A군은 초등학생 때 알게 된 C(15)군의 소개로 지난달 21일부터 B군 등 5명과 어울리게 됐다. A군은 약속 시간에 늦게 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이들로부터 매를 맞았다.
A군은 이를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말했고, 할아버지는 지난 4일 자신이 운영하는 정육점으로 C군 등 2명을 불러 "A와 놀지 말라"고 훈계했다. 할아버지에게 폭행 사실을 알린 데 화가 난 C군 등은 이날 성북구 길음동 A군의 집 담을 넘어 들어가 A군의 할머니에게 심한 욕을 하며 "A군을 데려 가겠다, 말리지 말라"고 협박했다. 겁에 질린 할머니가 정육점에 할아버지를 데리러 간 사이 C군 등은 A군을 인근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끌고 가 1시간 동안 잔혹하게 폭행했다. 이들은 A군을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주먹과 발로 때리고 대걸레자루와 우산으로 허벅지를 후려쳤다. 또 A군의 엉덩이에 라이터 불을 갖다 댔다. 폭행에 가담한 한 학생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영상 통화로 폭행 상황을 보여주기도 했다. 더욱이 이들은 A군이 피투성이가 돼 집에 들어가면 어른들이 폭행 사실을 안다는 이유로 사흘 동안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PC방 등으로 A군을 끌고 다니며 감금했다.
경찰 조차 친구를 짓밟은 이들 10대들의 잔혹성에 혀를 내둘렀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 학생 대부분이 PC방에서 폭력적인 게임인 '써든데스'를 자주 했다고 진술했다"며 "CCTV를 보면 실제로 같은 방식으로 맞은 경험이 있거나 그런 장면을 목격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A군을 폭행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이 집단에서 우두머리 격인 B군은 A군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폭행해 왔다"며 "B군을 제외하곤 모두 폭행 피해자이자 가해자"라고 덧붙였다. A군은 폭행으로 코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4주의 상처를 입고 정서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 심리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30일 A군을 집단으로 폭행ㆍ감금한 혐의로 B군 등 10대 3명을 구속하고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B군은 지난해 6월부터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으며 다른 4명은 성북구의 중학교에 다닌다. 가해학생 중 4명이 결손가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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