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치인가, 정당정치인가. 한국 정당정치의 위기를 둘러싼 논쟁이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시장이 당선되고 정치권 외부 인사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시작된 정당정치의 위기는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 등 시민참여적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기성 정당들의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경우는 정당의 지도부를 당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모바일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일대 혁신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주당의 시도는 세계 정당 역사상 전례 없는 실험으로서 이제 기성 정당이 해체되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정보기술(IT)과 직접민주주의적 메커니즘을 수용한 일종의 디지털 네트워크 조직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중시하면서 기존 기득권 정당의 해체와 새로운 개방형 정당의 등장을 거론하는 '시민정치'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전통적 '정당정치'의 입장에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정당의 해체가 아니라 적응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단지 정당을 구성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을 뿐 정당정치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으로서 그 역할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환경운동으로 출발해 정당화한 독일 녹색당이나 우리의 경우 '혁신과 통합' 등 시민사회 세력이 민주당으로 수용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운동 정치의 과잉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민주적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제도 정치의 복원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민주정치의 작동에 있어 선거를 통해 집권한 뒤 정부를 구성하고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집약, 조정해 정책을 책임지고 추진하는 정당의 역할을 시민사회가 대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논쟁에 있어 필자는 '시민정치'의 입장을 옹호한다. 먼저 양자가 반드시 상호배타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시민정치의 실험이건 정당정치의 적응이건 '시민정치 대 정당정치'의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고 SNS의 등장과 비판적 시민의 참여를 배경으로 일어나고 있는 시대적 변화를 어떻게 발전적으로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고 실용적인 자세일 것이다. 실제 우리 기성 정당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고 '시민정치'를 옹호하고 있는 쪽에서도 시민사회가 '정당정치'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시민정치'와 '정당정치'의 시너지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당정치' 측의 소극적인 자세다. 가령 최근 한 보수 신문이 제기한 '대의민주주의가 SNS를 포용해야 사느냐 아니면 SNS에 잡아먹힐 것이냐'라는 논의 아젠다는 이러한 수세적 멘탈리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민정치'의 부상은 거스를 수 없는 근본적ㆍ시대적 변화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투표와 정당가입 등 전통적인 정치참여 대신 뉴미디어에 기반을 둔 시위와 사회운동 등 직접행동이 보편화되고 있으며 이에 참여하는 비판적 시민은 주로 교육받은 젊은 중산층으로서 이제 직접행동은 정치참여의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저항의 정치'는 일탈적, 주변적, 반제도적 현상 혹은 민주주의의 위기의 징표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작년 아랍의 봄으로부터 뉴욕의 가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일관된 흐름이었으며, 월가 시위대의 대다수는 정규직(51%)이고 무직자는 15%에 지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된 바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봤을 때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시민정치' 수용 노력은 문제의 여지가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등 시민참여적 논의도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명직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한 이미지 변신에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의 경우도 지난 번 모바일 선거의 실험이 정당과 시민 간 정책을 둘러싼 진정한 정치적 소통으로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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