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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류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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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류 스토리텔링

입력
2012.01.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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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은 기껏해야 이탈리아 소도시의 집안 간 반목에 희생된 연인들 얘기다. 적대집안 젊은이들끼리 길거리에서 다투고 칼부림하다 오해가 엉킨 연쇄자살로 마감하는 줄거리다. 무엇보다 사실이 아닌 창작인 탓에 작위가 지나쳐서, 셰익스피어의 현란한 문장만 아니라면 하나 대단할 것 없는 신파조(調) 연애담이다. 그런데도 소설, 동화, 교향곡, 연극, 발레, 영화, 뮤지컬 등 온갖 장르로 수없이 복제되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러브스토리가 됐다.

■ 반면, 우리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는 두 나라 왕자와 공주의 애절한 로맨스다. 적국 왕자를 사랑해 스파이 노릇을 하다 제 나라를 망치고 아버지 손에 죽임 당하는 공주, 사랑마저 정략에 이용한 스스로를 괴로워하다 뒤따라 자살하는 왕자. 웅장한 스케일과 드라마가 쪼잔한 동네집안들 얘기 따위와 비할 바가 아니다. 억지로 꾸며낸 스토리도 아니다.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과 낙랑군주 최리의 딸 얘기로 <삼국사기> 에 엄연히 역사로 기록된 내용이다.

■ 이뿐인가. 별 볼일 없는 신분의 청년이 감히 이웃나라 공주를 꼬여내 아내로 삼는 <서동과 선화공주> 얘기도 있다. 이미 정분이 났다는 헛소문으로 공주를 궁에서 쫓겨나게 한 뒤 낚아채 마침내 왕좌에까지 오르는 백제 무왕의 이야기는 웬만한 작가의 상상력 너머다. 고구려 공주가 천하의 바보청년을 지아비로 택해 사랑의 힘으로 구국의 영웅을 만든 <평강공주와 온달장군> 도 마찬가지다. 설화적 요소는 좀 가미됐겠지만 역시 모두 사서(史書)의 기록이다.

■ 정부가 '한류문화진흥단'을 만들어 스토리 개발을 통한 한류확장 전략에 집중하겠노라고 밝혔다. 한국문화를 현대적으로 스토리텔링화해 관광 등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없던 걸 지어내려 애쓸 것도 없다. 이만큼 드라마틱한 역사적 러브스토리를 풍부하게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우리가 유럽처럼 일찌감치 세계사의 중심권에 있었다면 아마 이들 하나하나가 이미 세계적 문화컨텐츠로 각광받았을 것이다. 버려둬 그렇지 기막힌 컨텐츠는 우리 안에 널려 있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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