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담배를 끊었다. 넉 달 정도 되어간다. 제법 오래 참았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기간이 지났으니, 매일 한 갑 넘게 태워대던 담배로부터 이제 벗어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내 주변에도 수 개월, 심지어는 수 년 동안의 금연 이후에도 다시 담배를 입에 가져간 예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사실 담배를 멀리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 고백컨대, 흡연은 지금도 아주 강력한 유혹이다. 예전에 담배를 끊고 나면 담배를 쳐다보기도 싫어지고 멀리서 그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그건 거의 완벽한 거짓말이다.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실 때, 혹은 밥을 먹고 식당 문을 나설 때 어딘가에서 담배 냄새가 살짝 풍겨오면 혐오스럽기는커녕 한 대 얻어서라도 피워 물고 싶다는 생각이 몹시 간절해지는 것이다.
결국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라는, 주변의 충고를 긍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금연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속적 인내의 과정이라는 뜻이겠다. 결국 금연을 성공적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내 욕구를 효과적으로 억누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연의 달콤한 열매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는 담배의 경우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바람직한 것은 대개 단 한 번의 행위와 결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인내의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이를테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참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먹고 싶은 음식을 모두 먹어가면서, 마시고 싶은 술을 모두 마셔가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불행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우수한 성적을 내기 위해서,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서,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의 목록은 너무도 많다.
물론 한 번의 결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달콤한 열매를 모두 수확할 수 있는 예외적인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나이가 일흔이 되니 마음 가는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고 말했던 공자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흡연과 같은 하찮은 습관에 대해서 결연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보통 사람을 그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사회의 구성원은 대부분 공자 같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법과 도덕에 의지해서 하루하루 인내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올바른 사회 공학은 구성원들을 모두 공자 같은 도덕적 성인으로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결심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사회는 개인들이 각자의 욕망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현실적인 윤리는 완전한 도덕적 성인들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통제와 자율 그 사이의 중간 지점에 존재한다. 결국 문제는 통제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통제를 합리화하고 인간화하는 일이다. 물론 참고 참으며 또 참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담배도 술도 돈도 명예도 모두 돌같이 대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만, 그래서 모든 통제와 규제와 인내가 무의미해지는 경지가 찾아올 수 있겠지만, 그때는 인생의 생생한 열정도 모두 무의미해질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가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그 인내의 과정을 통과하면서 어른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 책상 앞에 '인내!'라는 글자를 붙여놓고 공부하는 수험생을 불쌍히 여길 필요도, 유치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마음속 어딘가에 '인내!'라는 글자를 붙여놓고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산다. 그것은 심지어 아주 옳은 일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참아내며 살아가는 당신 스스로에게 충분한 격려를 보내주시길.
김수영 로도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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