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은 한 사회의 구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중산층이 두꺼울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는 1980년대에 여기서 더 나가 개혁적 성향의 중산층, '중민(中民)'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보는 '중민이론'을 내놓았다. 학계 안팎의 이견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87년 6ㆍ29 선언을 끌어내는데 일조한 넥타이부대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중산층의 사회개혁 의지를 설명하는데 설득력을 지닌 이론으로 평가 받았다.
한 교수는 2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중민이 한국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구심점이라고 확신한다. 그에 따르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뉴미디어와 결합한 새로운 세대는 중민이 일상 생활에 확대된 사례다. 중민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연구의 필요성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 교수가 '중민 사회이론연구재단'(이하 중민재단)을 발족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30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사무실에서 창립식을 열고 공식 출범한 중민재단은 공익법인으로 기초사회발전 지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물론, 사회이론 연구자(단체)에게 연구비도 지원한다.
그는 재단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민정신의 핵심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이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인식을 갖고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사회가 1대 99로 양극화해 갈등이 심화됐지만 그럴수록 자기 이익만 챙기지 않고 약자의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중민을 발굴해 소개하는 것이 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합니다."
재단은 한 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김종엽(한신대) 주은우(중앙대) 김홍중(서울대) 교수 등 꾸준히 대중과 소통해온 사회, 정치학자 10명이 이사로 참여했다.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 울리히 벡, 클라우스 오페 등 해외 석학들도 자문교수단으로 참가한다.
한 교수는 "앞으로 3년간 중민재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결과를 재단이 운영하는 사회이론 전문 웹서버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80년대 386세대, 90년대 디지털세대처럼 사회 각 부문의 중민 모델을 개발하는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80년대에 2,000여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생애사적 보고서를 이미 데이터베이스화 했습니다. 90년대에도 비슷한 연구를 했고요. 중민 모델 찾기는 그 연장선에 있는 셈이지요."
이날 재단 창립 기념 세미나에서 발표한 '중민이론과 제2 근대화 12가지 명제'는 이런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논문이다. 재단은 한 교수의 중민이론 등을 이론적 배경으로 '제2 근대화와 중민의 역할', '복합 위험사회와 성찰적 위험관리 거버넌스', '국민의 눈높이로 본 대한민국의 소통지수ㆍ민본지수'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한 교수는 김대중 정부 때 제2건국범국민추진위 기획위원,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내는 등 정책가로도 활동했고, 2010년 정년퇴임 후 '한상진 사회이론연구소'를 설립해 연구활동을 해왔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