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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퇴임하는 '種子박사' 강병화 교수/ 산으로 들로 28년 발품…야생식물 씨앗 1700종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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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퇴임하는 '種子박사' 강병화 교수/ 산으로 들로 28년 발품…야생식물 씨앗 1700종 수집

입력
2012.01.3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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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과로로 쓰러졌을 때,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아주 억울한 게 한 가지 있었어요. 가족들이야 나 없어도 살겠지만 그 동안 수집한 종자(種子)는 내가 정리를 안 하고 죽으면 쓰레기에 불과했거든요."

강병화(64) 고려대 환경생태학부 교수는 다음달 퇴임을 앞두고도 온통 종자 생각뿐이었다. 강 교수는 1987년 모교인 고려대에 부임, 28년간 국내 최대규모인 1,700종의 야생 식물 종자를 수집하고 야생초본식물자원종자은행을 만들어 운영한 '종자 박사'다. 1983년 독일에서 종자를 전공하고 귀국해보니 "국내에는 종자와 잡초를 연구하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 시작한 연구가 어느 새 30년 가까이 됐다.

강 교수는 강의를 오전 중에 끝내고 1년 중 절반 이상 전국각지를 누비며 종자를 채집했다. 카메라와 저울, 자를 들고 다니며 산과 들에 난 식물들을 사진으로 찍고 다 여문 종자는 따서 모았다. 식물마다 열매 맺는 시기와 장소가 달라 종자를 얻으려 몇 번씩 찾아가는 것은 기본. 몇 달을 관찰하다가도 동물이 한 입에 뜯어먹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야외 조사를 나간 날만 총 3,880여일, 성장 단계별로 찍은 식물 사진만 30만장에 달한다.

2004년 급성 당뇨로 쓰러졌을 때 가족보다 종자 걱정이 앞섰던 강 교수는 그 후 본격적으로 종자 정리에 나서 총 2,037종의 식물을 담은 책 (2008년)을 펴 내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종자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강 교수는 "기후변화와 국토 개발로 자연생태계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야생 식물 종자를 수집, 보존해 생물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태계 조화뿐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도 생물 다양성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유전 자원이 인류 공동의 자산이었지만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생물다양성협약이 채택되면서 자국의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가 인정돼 앞으로는 유전 자원 확보가 국익과 직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강 교수는 "국립공원이나 국유림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있는데도 종자 수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농촌주변 식물은 농촌진흥청, 산지 식물은 산림청, 국립 공원 식물은 국립공원 관리 공단에서 맡아 종자를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림청과 농촌진흥청으로부터 퇴임 후 종자를 기증해 달라는 제안도 받았지만 "몇 년에 한번씩 책임자가 바뀌는 정부 기관보다는 대학이 안전할 것 같아서" 고려대에 종자를 기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에게 정년 퇴임은 새로운 시작이다. "2월 내에 사단법인 '야상자원식물 소재연구회'를 설립해 종자 수집과 연구를 계속할 겁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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