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국립산림과학원 바이오에너지기기실. 스테인리스 용기 사이를 연구원 여러 명이 분주히 움직였다. 안전모를 쓴 최석한 연구사가 초임계수물질당화장치에서 나오는 갈색 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흑설탕을 녹인 것 같은 물이 나무의 당분이 들어 있는 당화액(糖化液)이에요. 이틀간 발효하면 바이오에탄올이 만들어집니다." 밀가루처럼 곱게 간 백합나무와 물을 이 장치에 넣어 반응시킨 지 4분 10초만이다.
전체 공정을 통제하는 컴퓨터 화면은 반응기의 압력과 온도가 220기압, 373도라고 가리켰다. 최 연구사는 "이 장치의 핵심은 고온고압으로 만든 초임계수"라고 말했다.
물은 대기압(1기압)에서 100도일 때 끓는다. 그런데 압력이 대기압보다 커지면 끓는점도 높아진다. 이 원리를 이용, 연구진은 물을 373도로 가열하면서 220기압을 줘 '초임계수'로 만들었다. 이때 물은 여전히 액체상태이지만 물의 성질은 중성에서 산성으로 바뀐다. 산성도(pH)는 2.3으로 위산과 비슷한 수준이다.
반응기에서 나뭇가루는 초임계수가 된 물과 만난다. 산성을 띤 물이 나무를 구성하는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면서 포도당, 자일로오스 같은 당분이 물에 녹는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당화액의 pH가 산성이라 바이오에탄올을 얻을 수 없다. 당화액에서 에탄올을 얻으려면 곰팡이로 발효시켜야 하는데 곰팡이는 산성에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화액의 온도와 주변 압력을 서서히 낮춰 상온, 대기압에 이르게 되면 물의 성질은 자연스럽게 다시 중성이 된다. 별도의 중화반응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이를 농축시켜 누룩곰팡이로 이틀간 발효하면 자동차 연료로 쓸 수 있는 바이오에탄올이 만들어진다. 2010년 자체 기술로 만든 이 기기는 시간당 5,000㎖ 당화액을 생산할 수 있다.
최돈하 바이오에너지연구과장은 "효소로 나무를 분해하는 미국 방식은 당화액을 얻기까지 3일이나 걸린다"며 "5분 이내에 당화액을 만드는 초임계수 방법이 훨씬 경제적으로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탕수수 같은 식용작물을 쓰지 않으면서, 폐목재 등에서 바이오에탄올을 얻을 수 있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도 꼽힌다.
바이오에탄올뿐 아니다. 기름, 이차전지 부품까지 숲에서 얻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목재, 특용작물 등으로 한정됐던 산림자원의 폭이 기술 발달과 함께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림과학원에서는 지난해 나무 1㎏에서 바이오오일 530㎖를 얻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 기기는 나무를 갈아 만든 톱밥을 500도에서 2초 안에 급속 가열한다. 여기서 나온 연기를 냉각하면 끈적끈적한 바이오오일을 얻을 수 있다. 현재 핀란드, 캐나다 등에선 이렇게 만든 바이오오일을 난방 연료로 사용한다.
하지만 발열량이 원유보다 떨어진다는 점은 넘어야 할 산이다. 화석연료는 그 안에 있는 탄소를 태워 열을 내는데, 바이오오일은 탄소와 산소를 각각 절반씩 품고 있다. 반면 원유는 거의 대부분이 탄소로 돼 있다. 최 과장은 "나무의 구성 성분에 들어있던 산소가 바이오오일에 섞이는 것이 문제"라며 "산소 함유량을 낮추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산림과학원은 바이오오일에서 원유처럼 플라스틱, 섬유 등 석유화학제품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수민 연구사는 "석유는 태양광 등 다른 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지만 원유가 주는 다양한 물질을 대체에너지에선 얻기 힘들다"며 "산소 함유량을 낮춰 바이오오일의 질을 높이면 나무에서 섬유와 플라스틱 등을 얻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엔 셀룰로오스를 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크기로 아주 얇게 만든 나노종이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 종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배터리 등에 쓰이는 이차전지의 주요 소재로 쓰일 전망이다. 구길본 국립산림과학원장은 "숲은 자원 부족, 지구온난화 등 현재 인류가 골머리 썩는 문제를 해결해줄 열쇠"라며 "숲은 인류의 고향이자 미래"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국립산림과학원 공동기획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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