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을 시작할 무렵 갓 돌 지나 막 걸음마를 뗐던 아이가 마지막 칼럼을 쓰는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께 서툰 세배도 할 수 있을 만큼 부쩍 자랐다. 그래도 난 아이 앞에선 여전히 초보 엄마다.
얼마 전 양치질을 시키는데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며 칫솔을 밀어냈다. 아랫니 쪽인 것 같았다. 내 눈엔 이상이 없어 보였는데 양치질 할 때마다 같은 일이 며칠 반복됐다. 이상하다 싶어 치과에 데려갔다. 의사는 잇몸이 좀 부었다고, 그냥 둬도 곧 나을 거라 했다. 이에 이상이 있으면 양치질 할 때만 아니라 대개 음식을 먹을 때도 아파한다는 것이다.
다행이다 하고 일어나려는데 의사가 "혹시 아이가 이를 많이 가나요?" 하고 물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의사가 아이 앞니를 가리켰다. 끝이 매끈하게 갈려 있었다. 의사는 이갈이 습관은 고쳐주는 게 좋다며 자는 동안 한 번 살펴보라 했다.
아이 앞니에서 갈려 있던 부분은 윗니와 아랫니가 맞닿는 면(교합면)이다. 교합면은 주로 음식을 씹을 때나 침을 삼킬 때처럼 짧은 시간만 접촉한다. 그래서 모양도 씹는 기능에 적합하게 생겼다. 그런데 자는 동안 이를 꽉 물거나 옆으로 갈면 교합면끼리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치아에 가해지는 물리적인 힘도 정상적으로 씹을 때보다 2~10배나 된다. 그러면 점점 치아의 표면이 닳아 가장 바깥층인 법랑질이 깎여 나간다.
심하면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잇몸 속 치주조직에도 변화가 생긴다. 치주조직은 대부분 수직으로 받는 힘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갈이처럼 수평으로 가해지는 힘이 치주조직에 좋을 리 없다. 양병은 한림대성심병원 치과 교수는 "치아가 닿을 때만 힘을 발휘해야 할 턱 근육도 이갈이 때문에 밤새도록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턱 운동의 지렛대 역할을 하는 턱관절에도 무리한 힘이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이갈이를 특히 많이 하는 시기는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6~12세 때다. 헌 이와 새 이가 섞이면서 치열이 들쑥날쑥해져 치아끼리 자꾸 맞닿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아인 이제 47개월이니 해당이 안 된다. 그러고 보니 신혼 때 남편이 이를 가는 통에 잠을 설친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갈이가 유전된다는 의학적 근거는 아직 없다.
아이들 이갈이의 또 다른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정서적인 문제를 꼽는다. 예민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이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변욱 목동중앙치과병원장은 "아이를 편하게 해줘도 몇 개월 간 이갈이를 계속한다면 병원을 찾아 입을 다물었을 때 아래위 이가 제대로 맞닿는지 검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권했다.
아이가 이갈이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어린이집 생활이 더 신경 쓰이고, 한밤중에 자주 눈이 떠진다. 전엔 하는지도 몰랐던 이갈이 소리에 이젠 자다 벌떡 일어나 앉아 아이 입을 벌려도 보고 "이 갈지 말자"고 귓속말도 해본다. 천둥소리도 못 깨우던 엄마의 잠을 아이 이 가는 소리가 깨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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