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관리는 은행의 생명과도 같다. 고객의 소중한 예금을 허투루 빌려줘 부실화하면 은행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은행들은 대출 부실을 막으려 신용보다는 담보를, 성장성보다는 연대보증을 선호해왔다. 특히 경기가 불황일 때면 신규대출 문턱을 높이는 한편, 가차없이 기존대출 회수에 나서곤 했다. 그러니 은행을 향해 '비가 오면 우산을 뺏는다'는 불만과 원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은행들이 요즘 '비 올 때 우산을 펴겠다'며 금융 소외계층 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소기업 지원에 적극적이다. 중소기업 여신관리 개념도 '부도나면 무조건 대출 회수'에서 '부도 나지 않도록 미리 지원'으로 바뀌고 있다. 또 운영자금 부족으로 허덕이는 중소기업에 항상 '갑'(甲)으로 군림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이제 동반자, 조력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중기 리스크 커졌는데 지원은 2배
유럽 재정위기의 먹구름이 밀려들면서 중소기업은 벼랑 끝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미 중소기업 100개 가운데 17개는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이자비용)이 3년 연속 1 미만)이다. 경제 둔화가 예상되는 올해는 더 늘어날 게 분명한다. 예년 같으면 은행마다 중기 지원을 축소하고 기존대출을 회수하느라 부산했을 터. 하지만 은행들은 최근 중기 지원을 되레 확대하고 있다. 중소기업 설 특별자금 지원 규모를 예년보다 2배 이상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각 5조원, 우리은행이 3조원, 하나은행과 기업은행이 각 2조원씩 편성해 내달 초까지 지원한다.
직접적인 부담 경감으로 연결되는 대출금리 인하에도 앞장서고 있다. 기업은행은 수익 감소를 무릅쓰고 이달부터 중기 대출금리를 최고 2.0%포인트 인하했다. 15만여 개 중소기업이 총 2,000억원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저당권 설정비 은행 부담, 각종 수수료 인하 등의 지원책도 실행에 옮겼다. 기은 관계자는 "중기 대출의 약 90%가 20인 이하 영세기업 대상"이라고 전했다.
국민은행은 올해 중기 신규 대출 규모를 작년보다 5,000억원 늘어난 3조원 이상으로 책정했다. 올해 글로벌 신용경색의 파고가 만만치 않겠지만, "리스크 관리 속에서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아끼지 않겠다"는 민병덕 행장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하나은행 또한 프랜차이즈 가맹점 대상 신용대출(최대 2억원)을 대폭 확대, 지원하기로 했다.
맞춤형 통합 금융서비스 제공
은행의 자금지원과 금리인하가 안정적인 기업 운영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 것만으로 중소기업의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기업가치를 높여나갈 수 있는 경영 노하우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금융은 물론 비금융 부문 업무까지 지원하는 통합 서비스를 제공, 지속가능 기업이 되도록 도와주고 있다.
신한은행의 '기업성공프로그램'(CSP)과 우리은행 '우리 베스트 멤버스', 국민은행 'KB 히든스타 500' 등이 대표적이다. 신한 CSP는 일시적으로 유동성에 어려움이 있으나 영업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은행이 실사를 거쳐 필요자금 규모를 정하고 이후 회사 정상화 방안 등 경영컨설팅을 지원한다. 지난해 CSP를 통해 어려움을 해결한 중소기업은 184개로, 신한은 이들에 1조662억원을 지원했다.
우리은행은 최고경영자(CEO) 연령 40세 이하 '영 리더스', 여성 CEO 대상 '우리 퀸스' 등 5개 그룹으로 특화된 415개 중소기업을 선정,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 기업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경영컨설팅과 함께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고 창업주 2세대를 대상으로 '가업승계 프로그램'도 운용한다.
KB 히든스타 500 역시 대출한도 및 금리를 우대하는 한편 'KB Wise(와이즈) 컨설팅'을 통해 재무진단, 인사 및 성과평가 등 다양한 경영컨설팅과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한다. 기업은행은 1,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참! 좋은 무료컨설팅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하나은행도 중소기업사업부 안에 컨설팅팀을 만들어 가업승계, 경영진단, 세무상담 등 다양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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