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학문, 어디로 가고 있나?/이남인 외 9인 지음/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발행/454쪽·2만8,000원
학문을 인문, 사회, 자연과학으로 나눠 사고하는 방식은 12세기 이후 서구에 대학이 등장해 지식 체계를 세분화하면서부터 생겼다. 작은 단위로 쪼개진 학문은 한층 정밀한 연구가 가능해졌지만, 학문간 소통에 문제를 만들었다. 인문학자는 자연과학 분야 전문용어를 알아들을 수 없고 자연과학자는 인문학적 지혜가 부족하다. 무섭게 발전하는 기술 속도에 맞춰 이 발전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에 조언을 할 지식인은 거의 없다. 사회가 다시 학문 융합, 통섭에 관심을 두는 이유다.
신간 <융합학문, 어디로 가고 있나?> 는 이남인 서울대 철학과 교수,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등 각계 전문가들이 융합학문의 트렌드를 소개하는 책이다. 서울대에서 주관한 '미래 대학 콜로키엄' 발표 내용 중 융합학문에 관한 부분을 정리해 엮었다. 융합학문,>
이남인 교수는 융합학문의 포문을 열었던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개념을 비판하며 국내 학제 간 연구에서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윌슨의 통섭은 '자연과학적 방법을 통해 인문학 및 사회과학을 자연과학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전자를 후자와 봉합선 없이 연결시키려는 시도'다. 윌슨은 이 개념을 도입하며 뉴턴의 물리학을 시발점으로 화학, 생물학, 경제학, 심리학 등 학문들이 철학으로부터 독립해나가면서 철학의 영역이 줄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이 교수는 이에 반박하며 '독립해 나간 분과학문을 철학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철학의 분야가 하나씩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정치철학, 경제철학, 사회철학, 과학철학 등은 그 결과물이다. 또한 철학은 본성상 학제적 연구를 생명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학문융합 시대에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고 말한다. 철학과 인접 학문의 융합, 철학 사조들의 융합, 학문 융합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해결사 역할로서 철학적 사고를 이용하는 것 등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자연과학자의 눈으로 통섭을 말한다. 요컨대 융합학문이 둘 이상의 학문을 단순히 합쳐서 연구하는 게 아니라 둘 이상의 학문이 소통하며 새로운 하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 교수는 학문간 경계를 허무는 과정에서 통찰력이 생기고 융합의 효과를 나타낸다고 지적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사고 실험을 하고 자신의 분야 외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인접 학문에서 재원을 가져와 연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권준수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인간의 뇌가 융합의 총화라고 말한다. 자신의 전공 분야인 의학도 과학, 경제, 예술 등 전반적인 분야의 안목과 지식이 필요하다며 '인류 최후의 연구분야는 뇌과학'이라고 말한다. 소광섭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 역시 인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부학, 화학, 생리학 등 융합적인 측면에서 실험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덕일 소장은 조선의 성리학 체계를 소개하며 조선의 멸망 이유 중 하나는 성리학으로 유일사상통일을 이루어 소통의 문을 닫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최근 몇 년 간 유행한 융합학문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자칫하면 잡학이나 '섞어찌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며 우려한다. 각 분야 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이 책을 엮은 이유다. 저자들이 제시한 융합학문의 정의와 지침들은 국내 학계에서 통섭의 열기와 노력들을 보여준다. 이 시도들이 만들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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