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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1년 반 보급활동 끝내고 돌아온 김성래 4단 "유럽 바둑도 이젠…일본식 지고 한국식이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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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1년 반 보급활동 끝내고 돌아온 김성래 4단 "유럽 바둑도 이젠…일본식 지고 한국식이 대세"

입력
2012.01.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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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 반이 훌쩍 지났네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럽 지역에 한국 바둑을 알리기 위해 여기저기 무척 바쁘게 뛰어 다녔고 나름대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후임자가 없어서 어렵게 만든 한국바둑센터를 그만 문 닫고 돌아오게 된 게 무척 아쉽습니다. "2010년 6월 헝가리로 건너가 부다페스트에 한국바둑센터를 설립, 그 곳을 거점으로 삼아 유럽 각국을 누비며 바둑 보급 활동을 펼쳤던 프로 기사 김성래 4단(49)이 작년 말에 귀국했다.

_아주 돌아온 것인가.

"그렇다. 그동안 함께 지냈던 이영신(35 · 5단)과 고주연(23 · 2단) 등 두 여자 기사와 함께 완전히 철수했다. 좀 더 있어 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더 이상 버티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이 컸다. 유럽에 파견되는 프로 기사 1인당 연간 2,000만원씩 정부에서 바둑 세계화 사업 지원금이 나오지만 바둑 센터를 운영하고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_유럽에서의 바둑 보급 활동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바둑 센터는 한국의 바둑 도장과 비슷한 체제로 운영했다. 유럽 각국에서 온 학생들이 짧게는 1주일, 보름부터 길게는 3~6개월간 센터에 기숙하면서 바둑 공부를 했다. 여름 휴가 기간에 열리는 유럽바둑콩그레스를 전후해서는 미국, 캐나다,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도 왔다. 주로 각국 바둑협회 홈페이지나 유럽콩그레스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

_수강생은 얼마나 됐나.

"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보통 10여명 정도였다. 그래도 무척 바빴다. 평일엔 국내 바둑도장과 같이 오전에 수업, 오후에 연습 대국을 하고 주말에는 유럽 각 지역에서 열리는 바둑대회에 초청받아 특강을 하거나 지도 다면기를 했다. 유럽에서는 각 도시별로 적게는 20명에서 많게는 100명 이상 모이는 크고 작은 바둑대회가 주말마다 계속 이어진다. 어떤 대회는 규모가 너무 작아 숙식이 제대로 제공되지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한 번도 초청을 거절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영국 독일 프랑스는 물론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웨덴,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 각국을 돌아 다녔다."

-성과라면.

"우선 국가적으로 세계 최강 한국이 이제 적극적으로 해외 바둑 보급 활동을 펴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과 개인적으로는 유럽의 많은 바둑인들과 깊은 친분을 쌓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유럽지역 바둑보급은 일본이 주도해 왔다. 바둑책도 일본책을 번역한 게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현지인들은 케케묵은 일본식 정석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고 한국책의 영어 번역본이 많이 보급되면서 한국식 바둑이 대세가 됐다. 한국 바둑책 중에서는 내가 쓴 '21세기바둑' 시리즈나 윤영선 5단의 저서가 유럽 지역에 많이 알려진 편이다."

_유럽 바둑계의 현황과 앞으로의 보급 전망은.

"유럽에 바둑이 보급된 지 벌써 100년이 넘었지만 현재 바둑 인구는 2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생각보다 보급이 더딘 편이다. 새로운 게임에 대한 호기심 차원에서 바둑을 배우지만 대부분 초급 수준에 머물러 있다. 유럽 바둑계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좀더 성장하려면 강자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기존의 단기적인 프로 기사 파견 방식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유럽 바둑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려면 특히 10대 유망주의 발굴과 육성이 필요하다. 이들을 조직화해서 장기간 집중적으로 가르쳐서 그들이 장차 유럽 바둑계를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한국 바둑 센터를 만들었던 것인데 후임자가 없어 문을 닫게 돼 아쉽다."

김성래 4단은 1963년생으로 중학교 때까지 한국기원 연구생 생활을 했으나 대학(명지대 영문과)과 군대, 회사(해동화재)를 다니느라 프로의 꿈을 접었다가 서른세 살에 다시 입단대회를 통과한 늦깎이 승부사다. 장녀 채영(16)이 2010년 입단했고 차녀 나영(14)도 지난해 연구생 내신 1위로 조만간 입단이 유력한 바둑가족이다.

박영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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