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걸 때 신호음이 10번 이상 가기 전에 수화기를 놓지 말 것', '상대방이 수다스럽더라도 절대 싫은 내색 하지 말고 끝까지 듣기', '듣고만 있지 말고 도움이 되는 맞장구를 칠 것.'
서울 관악구 봉천동 관악노인종합복지관에서 7년간 봉사활동을 해온 하민자(72) 할머니는 전화상담봉사에서 얻은 노하우를 종이에 적어 옷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처음에 서툴러 말을 더듬는 바람에 매뉴얼을 만들어 봤다"고 했다. 하 할머니의 봉사는 매주 목요일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복지관에서 관악구 관내 노인 100여 명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것이다. 아픈 곳은 없는지, 식사는 잘 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며 목소리로 온기를 나누는 일이다. 이들 가운데는 독거노인도 있고 평범한 가정의 노인도 있지만 공통점은 외로움이다.
"전화기 너머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내가 너무너무 아프다'며 하소연하는 노인들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기도 해요."
노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베테랑이 다 된 하 할머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상담 대상자의 사망 소식이다. "전엔 어떤 분이 자꾸 '남편이 지금 없다'고만 둘러대기에 '저녁에는 오시냐'고 꼬치꼬치 물었더니 그제야 '갔다'고 털어놓더라고요. 그럴 땐 내가 죄를 지은 것 같아 할 말을 잃어요."
하 할머니는 2005년부터 1년에 2번씩 5명의 독거노인 집에 찾아가는 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 이들을 소개해준 복지관에서는 "안부전화만 해도 된다"고 했지만 하 할머니는 "손이라도 한 번 잡아드렸으면 하는 마음에 직접 찾아갔다"고 했다.
그가 노인들에게 가장 자주 하는 이야기는 "밖에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봐라. 우리도 사는 날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하 할머니가 이렇게 충고할 수 있는 것은 그 역시 2000년 소파 천 재단사 일을 그만두고 약 5년간 우울증을 앓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 할머니는 "'나보다 더 처지가 안 좋은 사람도 있구나, 나는 이만하면 괜찮다'는 것을 깨닫고 활기를 되찾았다"고 했다. 하 할머니가 직업이 없는 남편과 국민연금 32만원, 노인연금 14만원으로 생활하면서도 밥값을 아껴 독거노인 집에 고기를 사 들고 갈 정도로 열정을 쏟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9일 '2011 우수자원봉사자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한 하 할머니의 새해 소망은 "안부전화 드릴 노인 분들이 모두 건강하게 지내는 일"이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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