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미국 월스트리트 'Occupy(점령하라)운동'의 영향으로 10월 15일 서울에서 시작된 'Occupy 여의도'운동이 22일로 100일을 넘겼다. '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 여의도를 점령하라'는 구호로 주목 받았던 이 운동에 대한 관심은 이내 사그라졌지만 텐트 농성으로 운동의 불씨를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경제권력에 대한 규제만이 비정규직, 워킹푸어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우울한 미래를 바꿀 것이란 생각으로 뭉친 대학생들이다.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안팎인 26일 아침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 대학생사람연대 소속인 김재희(26ㆍ서울대 사회학과 4년)씨는 이날로 텐트 농성 46일째다. 10명이 교대로 농성을 하긴 하지만 김씨는 지난 설 연휴 하루를 빼곤 이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여름 정치인들이 청계광장에서 너도나도 반값등록금을 외쳤지만 그들이 언제까지 우리 입장을 대변해줄 지 알 수 없지 않냐. 등록금과 청년실업 문제를 1%가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농성 이유를 설명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그가 말을 할 때마다 하얀 입김이 나왔다. 발전기가 저녁에만 돌아가는 까닭에 전기장판이나 노트북은 모두 오프 상태다. 때문에 낮에는 회원들과 향후 활동계획 등을 논의하며 추위를 견디는 실정이다.
부산에서 올라온 김민준(23ㆍ부산대 정치외교학과 3년)씨는 "청춘이라 아픈 줄 알았는데 아프지 않은 세대가 없는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사회로 나가면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인 자신과 2월이면 퇴직하는 아버지, 몸져누운 어머니, 공부하러 상경했지만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는 누나를 대변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는 오늘과 내일 텐트 안에서 노숙한다.
원래 텐트는 세 동이었다. 하지만 농성 1주일이 되던 지난해 12월 17일 경찰이 철거해갔다. 이후 비닐 움막을 만들어 농성을 이어갔지만 이마저도 영등포구청에서 철거했다. 침낭과 피켓만 남기고 물품도 가져갔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 노숙하는 이들이 딱했는지 지난 5일 이후 새로 마련한 텐트 한 동은 아직 문제삼지 않고 있다고 한다.
김재희씨와 함께 텐트를 지키는 류창표(31ㆍ사회당 당원)씨는 "주변 건물 화장실을 사용하고 초코파이나 귤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지만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 키코사태 피해자 분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난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거래소 직원들도 가끔 찾아와 "우리도 마음속으론 당신들을 응원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학생사람연대 등은 이날 오후 3시 한국거래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을 앞둔 3월 더 큰 싸움을 만들기 위해 Occupy 대학생 운동본부를 건설하자"고 외쳤다. 이들은 1%가 독점하는 부를 나누자는 의미로 괴도 루팡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페도라' 모자와 망토도 걸치고 결의를 다졌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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