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비상대책위가 어제 회의에서 당명을 바꾸기로 했다. 당명 개정은 서울시장 보선 패배,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연루, 이명박 대통령 주변 비리 등 연이은 악재들로 당의 기력이 쇠진하고 민심이 떠나고 있는 데 대한 고육책의 성격이 강하다. 쇄신파 요구대로 아예 새 정당을 창당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보수세력의 분열 우려도 있고, 그렇다고 그대로 가자니 국민들이 외면할 것 같으니, 이름이라도 바꿔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은 이제 사라지게 됐다. 1997년 11월 21일 창당했으니 14년 3개월 만의 퇴장이다. 이 일천한 역사의 한나라당이 현존 정당들 중에서 최장수라니, 한국의 정당정치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공화당이 창당한 지 158년, 영국 보수당은 100년, 그 전신인 토리당까지 계산하면 334년의 역사를 헤아리는 사실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한국의 정당들이 정책이나 이념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해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명 개정은 표를 얻기 위한 이미지 변신이나 분위기 쇄신 차원의 미봉책으로 폄하될 소지가 많다. 이름을 바꾼다고 디도스 공격 사건이 사라지고 돈봉투 사건이 덮어질 수는 없다. 또 비리나 추문에 연루된 사람, 현 정권의 실정에 책임질 인사들이 그대로 있고, 돈봉투 사건이나 쪽지 공천 등 구태가 계속되는 한 당명을 아무리 바꿔도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관건은 본질을 쇄신할 수 있느냐이다. 정당 정치를 구성하는 사람, 행위, 정책, 제도에서 진정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공천심사위부터 제대로 구성하고, 이들이 엄정한 절차와 심사를 통해 바르고 능력있는 사람들을 공천해야 한다. 정책도 양극화 심화, 격차의 대물림이라는 시대의 아픔을 해소할 수 있게 짜고 색깔론, 편가르기 같은 구태도 극복해야 한다.
당명 개정은 이런 본질을 쇄신하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일 때 의미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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