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제주도를 포함한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주관한 뉴세븐원더스(N7W)재단 측이 '국제 전화사기' 시비 등 각종 의혹에 대해 26일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함구해 의혹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문제점을 확인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N7W재단의 버나드 웨버 이사장과 장 폴 기획이사가 이날 서울 청계천로 한국광광공사에서 자청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25일 입국한 웨버 이사장 일행은 "인증서 수여와 관련한 일정 논의"를 방한 이유로 밝혔다. 25일은 KBS '추적 60분'이 유럽 현지 취재 등을 통해 이 재단의 모호한 실체와 7대 경관 선정 과정의 문제점들을 고발하는 방송을 내보낸 날이다. 그동안 거듭된 의혹 제기에도 꿈쩍 않던 N7W재단이 방송을 계기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걸 차단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한국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추적 60분'에 대해 "비전문적이고 비윤리적" "한쪽의 편향된 시각"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7대 경관 선정 및 검증 과정, 전화 수익금 배분 구조 등 의혹 해소에 필요한 핵심 정보에 대해서는 "재단의 철학"이라고 둘러대거나 "비즈니스 관련 기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쟁점이 되고 있는 의혹과 해명을 정리했다.
재단은 비영리, 프로젝트는 비영리 아니다?
N7W재단은 스스로 스위스 취리히에 본부를 둔 비영리재단이라고 밝혀왔지만, 실체를 둘러싸고 의문이 잇따랐다. '추적 60분'은 취리히 현지 취재 결과, 재단의 주소지로 등재된 곳은 웨버 이사장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사설 박물관이었으며 독일 뮌헨에 있다는 또 다른 사무실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현지인들도 이 재단의 존재를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웨버 이사장은 이에 대해 "21세기엔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사무실 같은 게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게 확인된 것 아닌가"라고 응수했다.
웨버 이사장은 또 N7W 선정이 국제 전화요금 수익을 노린 영리사업이란 의혹에 대해 "우리는 N7W 캠페인이 비영리(non-profit) 프로젝트라고 말한 적이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수익사업임을 에둘러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 그러나 "이 캠페인은 상업적이기도 하고 비상업적이기도 하다"거나 "우리는 정부나 기업에 기부금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상업적 부분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논점을 흐렸다.
선정지 별 득표수를 공개하지 않아 신뢰성이 낮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7곳은 똑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게 재단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득표수를 공개하면 자연스레 순위가 드러나기 때문에 절대 밝힐 수 없다는 논리다. 전화투표의 전체 수익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투표수 환산을 통한 순위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신뢰성을 입증할 아무런 정보도 내놓지 않으면서 "문제될 것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한 셈이다.
스폰서 제안은 했지만 강요하진 않았다?
'추적 60분'은 N7W재단이 몰디브 인도네시아 등 후보지에 돈을 요구해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도 몰디브 현지 관계자 등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몰디브 홍보공사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재단측이 월드투어 비용, 후원금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했으며 항의하자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했지만 선정에 영향을 미칠 거란 압박을 받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지난해 7대 경관 선정과정에도 "N7W재단이 몰디브에 35만달러를 요구했다"는 등의 보도가 나왔다.
웨버 이사장은 이에 대해 "거짓말"이라며 "우리가 요구한 것은 등록비 199달러가 전부"라고 주장했다. 폴 이사는 "'추적 60분'은 훌륭한 드라마이지만 결코 뉴스는 아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웨버 이사장은 그러나 "스폰서가 붙을 경우 캠페인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후보지에)스폰서 제안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양영근 제주관광공사 사장도 "선정을 200일 앞두고 웨버 이사장이 방한했을 때 추진위 인사가 사비로 항공비를 대기는 했지만 돈을 요구 받거나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계약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어 돈 거래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왜 제주도만 미리 '공식 인증'했나?
N7W재단은 지난해 11월 7대 경관을 '잠정' 발표하면서 검증 과정을 거쳐 올해 초 최종 선정지 7곳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국제전화 요금이 모두 입금돼야 유효 투표로 처리하려는 속셈"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국내에서는 제주도청 공무원들이 세금으로 건 수백억 원의 행정전화 요금을 놓고 잡음이 일며 비판적 여론이 끓는 원인이 됐다.
N7W재단은 지난해 말 제주도만을 최종 선정지로 확인했다. 웨버 이사장은 "한국은 검증에 굉장히 효율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어 일찍 검증을 끝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증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나머지 6곳의 후보지에 대한 검증이 끝날 경우 제주도가 탈락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검증은 잘못된 투표를 빼기만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제주도가 탈락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주참여환경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제주도가 사전에 실체를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이 캠페인은 '사기'에 가깝다는 것이 명백하다"며 "감사원 감사를 청구해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추가 예산낭비 등을 막겠다"고 밝혔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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